등록 : 2014.11.18 21:08수정 : 2014.11.18 22:35

잊지 않겠습니다

치기공사 되려했던 다혜에게

사랑하는 우리 딸 다혜에게.

다혜가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왜 만져지지 않을까? 다혜 목소리도 들릴 것 같은데 왜 들리지 않을까? 다혜 보고 싶어서 어떻게 오늘 하루를 견딜까? 다혜 없이 산다는 것이 이렇게 허전했구나.

다혜야. 엄마 아빠는 슬픈 날이나 기쁜 날이나, 갠 날이나 흐린 날이나 여기 이 자리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만약 네가 꽃이 시드는 것처럼 지고 말았다면, 우리는 네가 누울 땅을 찾아 그 자리에 함께할게. 사랑하는 우리 딸 다혜야, 그리고 함께 떠난 친구들 모두 편히 쉬거라.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정다혜양은

단원고 2학년 9반 정다혜(16)양은 어릴 적부터 다섯살 많은 언니와 단짝 친구처럼 지냈다. 고민이 생기면 늘 언니에게 먼저 털어놨다. 언니는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면 늘 동생에게 맛있는 것을 사줬다. 다혜가 내년 수능시험을 치면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언니는 다혜를 ‘똥강아지’라고 불렀다. 나이 차이는 좀 있었지만,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해 늘 집에서 단둘이 어울려 놀았고, 그러다 보니 자매 사이가 좋았다.


다혜는 일을 하느라 힘든 엄마를 대신해 집에서 청소와 설거지, 빨래를 도맡았다.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늘 퉁퉁 부어 있는 엄마의 손을 주물러주던 마음씨 고운 아이였다. 엄마는 다혜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일기장을 보고서 딸의 꿈을 알게 됐다. 다혜는 치기공사가 되고 싶다고 써놨다. 평소 엄마는 다혜에게 건강하고 체격이 좋으니 경찰이나 군인을 하라고 말했지만, 다혜는 혼자서 몰래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다혜의 가족들은 전남 진도 팽목항에 내려가 다혜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4월이 다 가도록 다혜는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이러다 다혜를 영영 못 찾는 거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언니는 “다혜는 반드시 내 생일이 지나기 전까지 돌아온다”고 했다. 다혜는 언니의 생일이었던 5월4일 가족들의 품에 돌아왔다.


다혜 가족은 8월3일 이사를 했다. 언니가 너무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다혜가 두살 때부터 계속 살았던 집이다. 엄마는 다혜가 쓰던 책상과 컴퓨터 등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새집에 가져갔다.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점점 상태가 좋아지고 있었던 다혜의 아빠는 둘째 딸을 잃은 뒤 갑자기 암이 재발했다. 폐까지 암세포가 전이돼, 지금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병과 싸우고 있다. 하지만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는 다혜는 아빠의 병문안을 오지 못한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