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

 

전쟁 전 월미도는 600여 명의 주민들이 평화롭게 삶을 영위하던 섬이었습니다. 고기잡이를 위해 배를 띠우는 월미도의 풍경은 어쩌면 어떤 예술의 도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주 소중한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의 전쟁은 이런 평화의 월미도를, 말 그대로 풀 한포기 살아남을 수 없는,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1950년 9월 10일 미 해병대의 항공기는 월미도의 주민들뿐 아니라 작은 나무 한 그루조차도 살아남을 수 없도록 네이팜탄과 기총사격을 퍼부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월미도가 “폭탄에 푹 젖어들 정도”의 폭격을 당했고, 이로 인해 100여 명의 주민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분들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네이팜에 타 죽고, 또 폭탄에 찢겨 죽어야 했습니까?

미군에게 월미도는 단지 적진이었고 월미도의 주민들은 적이었단 말입니까?

월미도는 바로 몇 달 전까지 대한민국의 영토였습니다. 희생자들은 몇 달 전까지 순하디 순한 어부였고 그 가족들이었습니다. 전쟁은 월미도 주민들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던 9월 15일은 인민군의 압제에서 해방되기 시작한 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민간인학살사건을 기억하는 우리는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 날 이후 미군과 국군, 이승만 정부는 수복하던 모든 지역에 보복을 시작했습니다. 10월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위령제가 열립니다. 미군과 국군은 경기지역 뿐 아니라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곳곳에서, 유엔군이 수복했다는 모든 지역에서 보복 학살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이 이곳 월미도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전쟁은 군인들의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전쟁이 증오를 낳고 보복을 낳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비극을 멈추어야 합니다. 남북간의 긴장을 풀어야 하고, 휴전은 종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곳 월미도에서 61년 전의 전쟁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무차별 폭격으로 희생된 선량한 주민들이 무시당하고 있고, 여전히 그 가족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미도의 유족들에게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범국민위는 여전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억울한 죽음을 규명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배상과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 투쟁과 유해 발굴, 과거사 재단 설립 등 남겨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영령들이시어,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와 함께 투쟁해 주소서.


2011년 9월 15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 이이화 김영훈 임태환 오원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