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12 20:24수정 : 2015.02.13 08:16


세월호 유족 모욕…“실정법 위반 사안”
익명 유지해…“과도한 비난 자제해야”
댓글 수준 때문에…“표현의 자유 일탈”

수원지법 이아무개 부장판사가 장기간에 걸쳐 심각한 막말 댓글을 달아온 사실(▷ 관련기사 : 현직 부장판사가 포털에 보수편향·막말 댓글 수천건 올려)이 공개되면서 대법원이 진상 조사에 나섰지만, 제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법관윤리강령 위반이 분명한 만큼 강력히 징계해야 한다는 입장, 그 이상으로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견해까지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수원지법은 12일 이 부장판사 댓글 논란에 관한 진상조사에 나서, 법관윤리강령 위배가 확인되면 대법원에 징계를 청구할 방침이다. 성낙송 수원지법원장은 “아무리 익명으로 댓글을 작성했다고 해도 그 내용이 여러분들께 아픔과 상처를 줬다”며 “판사로서 이런 댓글을 작성한 행동은 문제가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 관계자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 징계할 수 있는지도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의 댓글 내용만 아니라 보도가 된 경위도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판사의 비행에 대한 문제제기 과정을 문제삼아 사안을 불문에 부칠 수도 있다는 뜻이어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발언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수천건의 댓글이 실정법 위반으로 수사받을 사안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이 부장판사는 세월호 유족 관련 기사에 “촛불 폭도들 미쳐 날뛰는 꼴이 가관이네. 저 ○○○들 쇠망치로 박살내버리고 싶다”는 댓글을 올렸다. 세월호 유족과 2008년 촛불집회 참여 시민들을 지칭해 “도끼로 ○○○를 쪼개버려야 한다”, “촛불 폭도들 그때 다 때려죽였어야 했다”는 식의 댓글을 수시로 올렸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당사자 고소가 있다면 모욕 혐의 적용은 충분히 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인터넷 댓글이나 게시판을 통한 모욕 행위에 대해 적극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인터넷 게시판에 성적인 욕설을 단 한차례 남겨 모욕 혐의로 기소된 누리꾼은 최근 대전지법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집단에 대한 모욕죄 적용도 검토될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 관을 택배에 빗대 모욕한 극우 사이트 ‘일베’ 회원이 모욕죄로 항소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댓글은 허위사실이 들어 있다면 사자명예훼손죄가 적용될 수 있다.

정치 편향적 댓글은 국가공무원법 위반 소지도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는 공무원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을 지지·반대하기 위해 문서나 도서 등을 공공시설에 게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한 판사는 “단순히 격한 감정에 욕설을 내뱉은 정도라면 정치활동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특정 정당에 대한 직접적인 지지 내지 반대 표현이 있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성을 전제로 인터넷 공간에 개인 의견을 개진한 것이기에 과도한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현직 판사는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이버망은 표현의 자유를 가장 폭넓게 보호해야 하는 공간이다. ‘일베’나 ‘키보드 워리어’ 등 수많은 폐해에도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 인사들 대부분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했다는 점만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한 부장판사는 “특정 지역·계층에 대한 혐오에 바탕을 둔 글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날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재판장으로 있는 재판부가 이날 선고하려던 10여건은 모두 변론재개로 연기됐다. 그는 23일자 인사에서 서울서부지법으로 발령나, 새 재판부가 사건을 재검토하려면 상당 기간 선고가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장의 ‘악성 댓글 취미’ 탓에 엉뚱하게 사건 당사자들이 손해를 입은 꼴이다.


노현웅 이경미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