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9.03 20:22l최종 업데이트 16.09.04 08:32l

 

3일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합동추모제 열려... 김지철 충남도교육감도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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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3일 오후 2시 충남도청 문예회관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충남합동추모제'에서 추모사를 하다 "고통스럽다"며 울음을 삼키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왼쪽) 그는 "가해자는 국가와 물리력이고, 분단"이라며 "정치지도자가 나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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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위로와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7번에 걸쳐 '사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지철 충남도 교육감은 유가족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내내 눈물을 훔쳤다.

안 지사와 김 충남교육감은 3일 오후 2시 충남도청 문예회관에서 열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충남합동추모제'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앞쪽에는 충남지역 각 시군의 민간인 희생자 신위(神位)가 걸렸다. 민간인 희생자 충남 합동 추모제는 이번이 처음이다.

충남에서는 1950년 한국전쟁 전후 국민보도연맹사건, 부역 혐의사건(공주형무소,대전형무소) 수감 재소자 학살사건 등으로 약 3만여 명이 군인과 충남 경찰에 의해 살해됐다.

안 지사는 이날 추모사에서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고통스럽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피해자 영령들께 후손으로써 잊지 않고 진실을 밝히고, 화해와 미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05년 학살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화해로 이끌기 위해 관련법을 만들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법 시한이 마감됐다"며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원회)의 시한 종료로 해산된 점을 아쉬워 했다.

안희정 지사 "가해자는 국가와 물리력... 그리고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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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 희생자 충남 합동 추모제는 66년만에 열린 것으로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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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유족들은 정부와 국회를 향해 ▲특별법 제정을 통한 희생자 명예회복 ▲ 유해발굴 및 추모공원조성 ▲전국 114만 희생자를 기리는 국가추념일 제정을 각각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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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지사는 "(민간인 희생 사건의) 근원으로 들어가면 가해자는 국가와 물리력이고, 분단"이라며 "때문에 정치 지도자가 나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이념과 증오를 선동하고, '역사적 사실을 덮자'거나 '어쩔 수 없었다'고 하고 심지어 '정당했다'고 주장한다"며 "이 때문에 땅에 묻힌 진실을 확인하는 것마저 양껏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민간인희생자 유해발굴사업을 수년째 중단한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지난 2005년 설립된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는 충남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해 명백한 국가의 불법행위로 살해됐다며 국가의 공식 사과와 위령 사업, 평화 인권교육 시행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는 물론 위령 사업과 평화 인권교육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안 지사는 "국가가 유가족의 염원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정부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거듭 사과했다.

그는 잠긴 목소리로 "근현대사와 관련된 기념사를 할 때마다 후손으로서 어떻게 역사를 이끌고 가야 할지 고통스럽다"고 말하며 울음을 삼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진실 밝히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힘을 모아 미래와 평화로 가자"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충남도는 지난 5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각 시군청과 읍면동 사무소에 '한국전쟁 희생자 미신고 유족'에 대한 희생자 신고 창구를 마련해 호평을 받고 있다.

김지철 충남교육감 "정의와 생명, 통일 염원 새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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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철 충남도교육감(왼쪽)이 한 유족회원이 낭송하는 시를 들으며 흐느끼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오른쪽)도 침통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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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지철 충남도교육감은 아헌관으로 참여해 희생자 신위(神位)에 술잔을 올렸다. 김 교육감은 술잔을 올리기에 앞서 축문을 들으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한 유족회원이 자신의 사연을 담은 시를 낭송하자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는 추모사를 통해 "충남교육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학생들 가슴 속에 정의와 생명, 통일 염원이 새겨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석희 충남유족연합회장은 "아직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땅만 파면 쏟아져 나오는 유골들이 국가범죄를 증언하고 있다"며 "유가족들이 억울함이 없는 세상을 소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박수현 전 국회의원, 홍재표 충남도의원 등 500여 명의 참석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정부와 국회를 향해 ▲ 특별법 제정을 통한 희생자 명예회복 ▲ 유해발굴 및 추모공원조성 ▲ 전국 114만 희생자를 기리는 국가추념일 제정을 각각 요구했다.

유가족들은 행사 도중에 희생된 부모를 떠올리며 일제히 '아버지!'와 '어머니!"를 외쳤다. 목소리도, 눈시울도 촉촉히 젖어 있었다. 

한편 충남 도내에는 공주유족회(회장 곽정근), 홍성유족회(황선항), 아산유족회(김장호), 부여유족회(이중훈), 서산유족회(정명호), 서천유족회(이재명), 예산유족회(박성묵), 태안유족회(정석희) 등이 구성돼 있다.

아래는 이날 참석자들이 희생자 신위에 올린 축문이다.

유세차

1950년 경인 난리/땅이나 파먹던 죄 없는 농투성이를/두렁 치던 논에서 거름 내던 밭에서/흙 묻은 손 그대로 동아줄에 꽁꽁 묶여/개처럼 끌려가 죽었습니다

사상이 무엇인지/가갸거겨도 모드던 무지렁이를/보도연맹의 낙인을 찍고/부역의 딱지를 붙여 평화롭던 이웃을 갈랐습니다

아버지!/ 원통하고 애통합니다/ 근근이 살아남은 새끼들은/아비 없는 후레자식에 빨갱이 자식으로/입이 있으나 말 못하는 벙어리요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로/모진 세월 육십육 년을 휘돌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버지!/ 가슴이 찢어지고 목이 멥니다/평생을 불러보지 못한 얼굴 '아버지'/ 한 번도 그려보지 못한 '아버지'/생전에 효도 한번 못 해 본 게 한이 되어/불효자는 땅을 치며 통곡합니다

아버지!/ 이제 눈물을 거두시고/통곡이 용서되게 하시고/증오가 화해의 길이 되게 하여 주소서/ 부디 해원 안식을 비옵니다

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