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13 21:15수정 : 2013.02.13 22:22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의 종말을 선언한 데 이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북의 핵무장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지난해 장거리 로켓(인공위성) 발사 성공에 뒤이은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협상을 통한 북한의 핵 폐기는 불가능해졌다는 인식 아래, 기존 6자회담 등 핵 협상 무용론이 힘을 얻고 있다.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게임이 펼쳐지는 이른바 ‘게임 체인지’ 국면을 맞아 유엔의 대북제재를 넘는 새로운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무성하다. 한쪽에선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 군사적 선제타격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3차 핵실험에서 북이 얻은 건 무엇이고 잃은 건 무엇인가. 북의 핵 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북의 핵 폐기는 가능한가. 대화와 협상 아닌 대안이 존재하는가. 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2기 행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핵·외교 남북관계 전문가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 문정인 연대 교수(정외과)가 이런 문제들을 놓고 12일 저녁 서울의 한 호텔에서 머리를 맞댔다.

 두 전문가는 한·미가 북의 핵을 막을 수 있는 외교역량을 모두 소진했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단계적 접근을 강조했다. 특히, 북의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전제로 추가 핵무장과 핵확산을 막는 상황 악화 방지를 위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북이 요구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해소와 궁극적 핵 폐기를 위한 본격적인 외교협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에도 방점을 찍었다. 이를 위해선 박근혜 당선인의 외교적 상상력과 정치적 결단력, 그리고 올바른 정책 결정을 위한 정교하고 과감한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 강태호 기자, 정리 김외현 송채경화 기자 oscar@hani.co.kr


“한·미, 북한 핵 막을 수 있는 외교역량 아직 남아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6자회담 무용론 얘기하려면
다른 유용한 대안 있어야 가능
6자회담은 여전히 북한 얽어맬 틀
또한 중국이 수용할 수 있는
동북아질서 구축할 유용한 수단

‘북핵 불용’ 원칙적 천명 넘어
박근혜 정부, 구체적 방안 도출해야
미국의 체면도 살리고
북한의 명분도 세워주고
중국이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창의적이며 과감한 발상 취해야

 

문정인 연세대 교수

남북대화 가능한 한 빨리 재개
현 상황 타개할 방법 고민해야
그중 하나가 6자회담 재개
핵물질, 핵시설, 핵프로그램
검증 가능하게 폐기할 수 있으면
추가 확산과 핵증강 막을 수 있어

한반도 전쟁참화·비핵화 갈림길
핵은 핵, 남북관계는 남북관계
박근혜 정부, 병행추진 전략 필요
남북간 신뢰 구축하면서
북 핵문제 양보 외교적 국면 가야

 

사회 북한은 왜 3차 핵실험을 했다고 보는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뭔가

 

 

 송민순 기본적으로 북한이 자기들이 정치·경제·안보 측면에서 확실한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핵무기를 확보하는게 상책이라는 판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이미 계획된 핵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시킨 거다. 플루토늄인지 우라늄인지는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어려운데 플루토늄은 적어도 3차례 이상 해야 사용할 수 있다는게 핵을 개발한 나라들의 사례다.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4차 5차 간다고 보는 게 맞다.

 

 

 앞으로 협상을 하든 안하든, 핵보유국으로 가는 것이 핵 문제를 둘러싼 대미·대남·대일 관계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그 길로 가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잃을 것은 단기적으로 중국과 관계가 불편해지고, 당장 대남·대미 관계에선 경제적 이익을 못 얻겠지만 그런 불이익이 장기적으로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얻은 게 크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김정일과는 다른 김정은의 지도력 약화와 3차 핵실험을 연결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든 누구든, 북한의 어떤 지도부가 있더라도 이 길을 갈 것이다. 북 지도부의 집단적 안전, 집단적 권력 유지 등의 계산과 힘에 의해서 가는 것이다.

 

 

 문정인 북 외무성 성명은 핵실험 뒤 ‘다종화’라는 표현을 썼다. 핵무기 다종화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같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소형화를 얘기했다. 핵무기 보유국이 되려면, 핵탄두, 미사일을 가져야 하고, 핵실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소형화시켜서 단거리 탄두에도 핵 탑재를 시킬 수 있어야 완전히 핵무기 보유국가라고 한다. 지금까지 북한은 소형화는 하지 못했다고 얘기해왔는데 이를 보완했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우리 길’로 가겠다, 핵무기 보유국으로 가겠다는 것을 정확히 천명하는 것이다.

 

 

 북한은 뭘 얻었나.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 주권, 존엄이라는 것,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김정은의 국내정치 정통성을 얻었다. 물론 적지 않은 댓가를 치뤄야 한다.유엔등의 제재로 민생은 더욱 어려워진다. 자주와 존엄을 향상시켜 대내적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과 인민의 삶이 피폐화되는 것 사이에서 상당히 고민이 될 것이다.

 

 

 사회 그렇다면 6자회담 등 그동안의 협상은 의미가 없었다는 얘기도 가능한데

 

 

  그건 아니다. 북이 ‘6자회담 종말’을 선언했지만, 누가 무력화시켰나. 6자회담은 유효한 역할을 충분히 했다. 2007년 2·13 합의에 의해서 1단계 폐쇄·봉인을 했고, 2단계 불능화했다. 영변에 있는 원자로 냉각탑을 해체했기 때문에 더 이상 플루토늄 생산을 못하게 됐다.그래서 새로운 대안인 농축 우라늄 쪽으로 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 크다. 6자회담의 판을 깨는 원인제공을 했으니 그걸 명분 삼아 농축 우라늄을 정당화한 것이다. 6자회담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이 판을 깨고 일본이 동조한 것이다. 6자회담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되지 않았다.얼마 전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이 서울에 와서 같은 얘기를 했다. 우선, 우리가 원하는 북한을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북미 공동커뮤니케를 가능하게 했던 페리 프로세스를 깼던 2002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최악의 외교적 실패라는 것이다. 세번째 대북 제재로 군사적 행동, 정밀 타격이 가능한가인데 1994년엔 모든 시설이 영변에 있어서 가능했지만, 지금은 북한이 농축 우라늄 시설을 은닉해 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정밀 타격을 통해 제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군사적 행동을 한다 해도 우리가 원하는 정치적 목적을 얻을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결국 협상을 통한 타격 외에 다른 길 없지 않느냐 하는 얘기다.

 

 

 송 6자회담 무용론을 얘기할 땐 다른 유용한 게 뭐가 있는지 대안을 얘기해야 한다. 6자회담이란 다리를 건너며 다녔는데, 이 다리가 허약해 보이고 잘 안 맞다고 다리를 끊으려면 새로운 다리를 지어놓고 해야 한다. 6자회담에서 북이 중국과 미국 등 여러나라 앞에서 핵을 포기하겠다고 한 약속은 6자회담이 그대로 기능하는 한 북한을 얽어맬 틀이자 규범으로 작동할 수 있다. 6자회담은 북핵문제 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중국이 수용할 수 있는 질서를 구축할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6자회담을 6자의 회담으로 생각하는데, 실제는 여럿의 양자 회담 또는 3자, 4자회담의 집합체다. 미-북 간에 회담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6자회담 틀 속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만큼 포괄적인 것이다.

  

 

 사회 북한이 나쁜 짓을 할수록 우리는 양보하고 들어주는 식으로 비쳐질 협상으로 가는 정책이 지지를 얻기는 어렵지 않은가?

  

 

  우리도 전술핵을 보유해 핵균형을 이루자는 주장이 있지만 기본적인 문제점은 북쪽이 겨냥하는 것은 미국이다. 우리와는 재래식 전력에서 북은 수도권을 볼모로 한 전력의 전진배치로 대응하고 있지 핵무기 개발이 전적으로 남쪽을 겨냥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도 핵무장에 나서 전술핵을 보유할 경우 그 댓가는 너무 커 보인다. 일본의 핵무장을 사실상 허용해주는 것이 되고, 미국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심지어 동맹이 깨질 수도 있다. 우리 홀로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동북아 전체에 핵 도미노 현상이 확산되면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군사적 조처도 문제고, 전술핵 가지는 것도 댓가가 너무 크고, 강력한 대북 제재는 중국이 참여할지 불투명하다. 북한을 완전히 목조르거나 군사적 조처로 항복시키지 않는 한, 북이 핵무기를 포기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상황 악화를 막는 게 우리의 현실적 목표가 돼야 한다. 여전히 협상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문제는 어떤 협상을 해야할 것인가다. 미국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세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더이상 북한이 우라늄 탄을 포함한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게(no more), 두번째는 북한이 핵탄두를 정교화, 소형화하여 미사일에 탑재시키는 걸 막아야 한다 (no better). 세번째는 이란이나 시리아 같은 제3국으로 핵 물질이나 무기의 유출을 막는 것(no export)이 돼야 한다.북에 대한 냉철한 현실 인식에 기초한 대북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 6자회담의 목표는 비핵화였다. 북한이 핵탄두를 가진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이 우라늄탄까지 가졌다고 추정되는 판에 한번에 핵폐기로 갈수는 없다. 우선은 상황 악화를 막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송 문 교수가 말한 ‘3노(no)’를 1단계 목표로 삼고, 폐기를 궁국적 목표로 추구해야 한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함께 이 좁은 공간에서 같이 살 순 없을 것이다. 그동안의 협상을 보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외교가 이뤄졌는지가 의문이다. 북의 핵폐기를 위한 외교적 수단이 소진됐다고 보지 않는다. 북한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펴고 압박·제재하고 있어 생존을 위해선 핵무기를 개발해야겠다고 한다. 북한의 이런 주장을 중국은‘합리적인 안보 우려’라고 표현하면서 미국이 수용한다면 북한이 매력을 느끼고 호응할 거라고 한다. 중국이 북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보고 있는 한 무시할 수 없다. 북미 관계정상화를 논의할 수 있으며 북 핵 폐기 과정에 진전이 있으면 제재를 해제한다는 입장을 제시하면서 북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중국을 설득하고 압박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도 대북제재에 본격적으로 동참하는 게 가능하다. 이런 본격적인 외교마저도 실패했을 때 중국도 군사적 수단을 거부하기는 어려운 위치에 처할 것이다.

 

 

 북이 핵을 가지고 큰소리 치는 것은 사실 남쪽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를 인질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북이 뉴질랜드쯤, 태평양 어디 있다면 그까짓 핵무기 한두개 만들었다고 미국에 큰소리 칠 수 있나. 미국이 군사적 공격을 감행해 제거하면 된다. 그렇게 못하는 건 북이 장사정포 같은 재래 무기로 남을 인질로 삼아 보복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보리가 이번 핵 실험에 대응해 중대조처를 취할 때 해상에서의 선박검색 강화 등 강제적 조처들이 수반될 수 있다. 북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할 것이고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그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되는 건 남쪽이다.

 사회오바마 행정부 1기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북의 핵무장을 사실상 용인한 결과가 됐다는 비판을 받아들인다 해도 핵실험을 했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대화와 협상을 얘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오바마 대북정책의 가장 큰 실패는 2009년 4월5일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갖게 된 선입견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핵없는 세상’을 주제로 연설을 하려던 날 새벽에 북한이 로켓 실험 발사를 해서, 오바마가 연설문에 북한을 규탄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아직도 오바마가 그 시각에서 북한을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그건 마치 부시가 북한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대한 것과 다르지 않다. 오바마가 1차 대선 후보 당시 어느 누구하고도 만나서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한 건 이미 지나간 일이다. 오바마는 어쩌면 편견에 찬 시각에서 북핵문제나 북한 지도부를 보고 있는지 모른다. 북한과 협상을 통한 타결이 어려운 이유다. 어느 참모도 오바마의 이런 인식을 바꾸려하지 않는 것 같다. 한편에선 이란 핵, 아프가니스탄 문제 등으로 우선 순위에서도 북한이 밀렸지만, 다른 한편에선 오바마가 가진 그런 인식과 선입견이 북핵을 상당히 풀기 어렵게 만들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이 들어갔는데, 그가 오바마의 선입견을 깨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어떤 불행한 결과가 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송 2009년 4월5일 ‘프라하 충격’도 살펴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북한이 미국이나 외국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모르는 게 많다. 북이 몇달 더 기다리면서 오바마 정부의 정책담당자들이 확정되고 정책이 나오는 걸 보면서 해도 됐을 것이다. 오바마가 가진 인식을 깨는 건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오바마 1기 행정부는 사실상 대북정책이 없었다.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지한다는 게 계속 반복됐다. 미국이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동맹국인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통미봉남’ 공포만 벗어나면 된다 해서 거기만 매달렸다.

  

 

 2기 행정부에서 케리 국무장관에게 주목할 것은, 베트남 참전용사로서 베트남 수교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란 점이다. 수교를 통해서 문제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합리적 온건함을 갖고 있다. 그렇게 미국이 베트남과 수교했기 때문에 오늘날 아시아, 특히 동남아에서 미국이 지금의 위치를 확립하게 됐다. 이런 상황을 북한에 대입해보면 케리가 북한에도 그렇게 나설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케리 국무장관의 철학보다 더 무게를 갖는 미국의 외교정책은 ‘협박에 굴해서 협상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등 협박으로 밀어부친다고 해서,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협상에 나오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 협상이 6자회담인데 북은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딜레마다. 이 딜레마에서 우리 정부가 역할을 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박근혜 정부는 ‘북핵 불용’이라는 1차적 원칙 선언 외에는 없다. ‘불용’즉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북핵 불용으로 가기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도출해 내야 한다.

  

 

 사회 박근혜 정부가 나선다 해도 북한은 비핵화 회담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나?

 

 

 문 북한은 핵 문제는 미국, 그리고 더 나아가 6자회담으로 얘기하자는 것이다. 남북 관계는 별개로 본 것이다. 진보 정부라고 해도 과거 정부가 한 것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남북대화를 빨리 재개하고, 북한과 만나서 어떻게 하면 현 상황을 타개하고 빠져날 수 있는지 심층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그중 하나는 6자회담 재개로 2·13 합의 2단계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엔 기본 가정이 하나 있다. 아직도 유효 할지 모르나 북한은 핵시설, 핵프로그램, 핵물질은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고 한바 있다. 물론 핵탄두, 핵무기는 쉽게 폐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하고,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체제 오지 않으면 핵무기를 포기하진 않겠다는 게 북한의 의도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핵물질, 핵시설, 핵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할 수 있으면, 추가적인 확산과 핵무장력 증강을 막을 수 있다. 이것도 양보이므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소형화가 비교적 용이한 우라늄 탄이 이란, 시리아, 헤즈볼라, 하마스 등 반이스라엘 세력 또 국제 테러리스트 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 핵 보유보다 핵 확산에 방점을 두어왔다. 이와 관련 북한이 성의를 보일 수 있도록 남쪽이 북쪽에 설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다. 북이 이들 국가들에 핵물질, 핵탄두 미사일을 이전하지 않겠다는 것을 비공식 채널 통해서라도 미국 지도부와 의회에 확약해 준다면 아주 좋은 카드가 될 것이다. 북한도 양보하는 게 있어야 워싱턴도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니냐. 박 당선인이 말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바로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 남북이 대화하며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과오를 다시 범해선 안된다. 남북관계를 북핵문제의 볼모로 잡히게 해서, 완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가져와선 안된다. 박근혜 정부는 가급적 핵은 핵, 남북관계는 남북관계, 이런 병행추진 전략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면서 북이 핵문제도 양보하는 외교적 국면으로 가야 우리도 살고 북도 살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올 수 있다. 되돌아보면,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고 북한편에 있었다. 북한 체제는 생존했고 그사이 핵 무장력과 미사일 능력을 계속 강화시켰다. 상황은 계속 어려워졌다. 또 인식할 것은 우리가 풀지 않으면 어느 누가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행동 주도권 잡고 우리가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당선자의 외교적 상상력과 정치적 결단력 필요하다.

 

 

  박근혜 당선자의 주도로 민주통합당이 참여해 초당적으로 협력하자면서 함께 북한을 규탄하고 핵실험을 용인할 수 없다고 한 것은 맞다. 거기에 대응해서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어떻게든 협상을 하고 대화로 풀자는 민주당의 생각도 받아들이면 그때 진정한 초당적 협력이 가능하다. 6자회담이 중단된 것은 사고였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 현장에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수습해야 한다. 2008년말, 2009년 4월 그때 현장으로 가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9·19 공동성명은 북핵을 없애는 설계도였고, 2·13합의는 1차 시방서였다. 지금 6자회담을 대체할 대안이 없는 한, 6자회담의 설계도를 재구성해서 수리하는 설계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제3의 설계도와 시공 계획서를 새 정부가 초안으로 만들어 미국, 중국, 북한을 설득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미국의 체면도 살리고, 북한의 명분도 세워주고, 중국이 힘을 보탤 수 있도록, 굉장히 창의적이면서도 과감한 이니셔티브를 우리가 취해야 한다. 그건 앉아서 관료적인 사고로 면피성 행동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 문제로 정권이 성공했느냐 아니냐를 걸고 하겠다는 각오가 있을 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5년은 빨리 간다. 초안 만들고 다른 나라 의견을 조율하는 데 2년 정도 지나고, 3년차 지나면 힘이 빠져서 다른 나라들이 열심히 따라주지 않는다. 케리 국무장관이 3월에 온다고 했다. 개략적 그림을 가지고 얘기해야 하는데, 지금 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창의적이고 정교하고 과감한 이니셔티브를 쥐려면 대통령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참모들이 해서는 절대 힘을 받을 수 없다. 대통령은 기술적인 것을 다 알 필요가 없다. 뼈대 전체를 장악하고 있어야 그때 그때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을 박근혜 새 대통령에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