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3 21:00수정 : 2013.03.03 21:12

 

오멸 감독이 지슬 촬영지였던 동백동산에서 지슬원정대의 영화 속 배경 질문에 직접 설명하고 있다.

제주 개봉 4·3영화 첫주 관객돌풍
21일부터 전국 상영돼 흥행 기대감
촬영지 답사 프로그램도 관심 끌어
“제대로 재평가하고 상처 치유해야”

“아방에 아방에 아방덜 어멍에 어멍에 어멍덜…제주사름덜 살앙죽엉 가고저 하는게 이어도우다”

왜 죽는지조차 모른 채 숨진 수많은 ‘아방’(아버지를 뜻하는 제주방언)과 ‘어멍’(어머니)들의 넋을 어루만지는 노래가 흘렀다. 2일 <지슬> 촬영지 중 한곳인 제주 선흘리 반못굴에서 이 영화 출연자인 양정원씨가 기타를 치며 <지슬>의 주제곡 ‘이어도사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청중은 좁고 어두운 굴에서 웅크리고 노래를 들었다. 이 영화 촬영지를 둘러보는 답사 프로그램 ‘지슬원정대’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선흘리 일대는 1948년 제주 4·3항쟁 당시 진압 군인들이 집들을 불태워 주민들을 학살한 곳이다. 제주시내 복합상영관 씨지브이(CGV)에서 <지슬>을 본 뒤, 엄마와 함께 ‘지슬원정대’에 참가한 유세린(13)양이 말했다. “죄도 없던 분들이 죽음을 당했을 때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지슬>(감독 오멸)이 개봉 첫 주부터 극장 매진행렬에다 촬영지 답사 프로그램까지 가동되는 등 ‘지슬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1월 말 세계 최고 독립영화 축제인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외국영화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지슬>은 제주 씨지브이에서 1일 먼저 개봉한 뒤 21일부터 전국으로 확대 상영된다. 제주에서 흥행돌풍을 일으켜 4·3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자는 오멸 감독의 뜻이 반영됐다. 그 바람대로 1~3일 3일간 제주 씨지브이 한곳에서 모은 관객만 3000명이 넘었다. 독립영화들이 상영관을 제대로 잡지 못해 1000~2000명도 모으지 못하고 종영하는 현실에서, 이례적인 기록이다. 개봉 첫 날엔 총 13회 상영회차 중 밤 10시 이후 상영을 빼고 10회차가 매진됐다. 이날 할리우드영화 <잭 더 자이언트 킬러> 등을 제치고 제주 씨지브이 상영작 중 최다관객을 모았다. <지슬>은 1948년 11월 주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사살하라는 미 군정 소개령이 떨어진 뒤 제주 큰넓궤 동굴에 숨은 주민들의 실화를 다룬다.

제주에서 만난 오멸 감독은 “기쁠 줄 알았는데…”라며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극장을 생전 처음 찾아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이 분들이 내 영화를 보러온 게 아니라 4·3을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하니 슬프더군요.”

개봉 첫날엔 배우 안성기·강수연 등으로 꾸려진 <영화인원정대>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 부부가 제주로 와서 개봉을 응원했다. 문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4·3 진상 조사를 하며 큰넓궤 동굴에 온 적이 있다. 4·3이 제대로 재평가되고 관련된 분들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슬>을 본 40대 주부 오경미씨는 “영화 마지막에 넋을 위로하는 장면에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지슬>에 배우 겸 스태프로 참여한 조은씨는 “‘<지슬> 입장하겠습니다’라고 하자 관객이 우르르 들어갈 때 놀랍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지슬> 개봉에 맞춰 촬영지와 4·3의 역사가 깃든 장소를 영화 출연진과 돌아보는 답사 프로그램 ‘지슬원정대’도 관심을 받고 있다. 자파리필름과 제주생태관광(대표 고제량)이 기획한 ‘지슬원정대’는 영화에서 주민들이 대피하는 장소 중에 한곳으로 촬영된 동백동산과 극중 ‘순덕’이가 군인들한테 잡혀 총살을 당할 위기에 처하는 용눈이오름, 제주 강정마을 등을 둘러본다. 30여명이 참가한 ‘1차 지슬원정대’는 오멸 감독과 촬영지에서 영화 뒷얘기도 나눴다. 앞으로 7회차를 더 모집할 예정이다.

영화에 ‘원식이 삼촌’으로 출연한 배우 문석범씨는 “4·3과 관련된 어르신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글 제주/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