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은 제1066호에서 소개한 남편의 죽음에 이어 그 아내의 사망에 관한 의무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한꺼번에 부모를 빼앗긴 유가족의 절규와도 직접 마주했다. 국가가 보호하지 못한 죽음 앞에서 이 부부의 자식들은 “국가의 살인”이라고, 참았던 말을 끄집어냈다. 제1065호에 썼을 때만 해도 확진 판정 상태였던 환자가 정부의 비밀주의 속에서 어떻게 생을 마무리했는지도 다시 짚어봤다. 대통령의 표현처럼 ‘중동식 독감’에 불과한 메르스에 여러 생명이 너무 빨리 삶을 재촉해 떠나고 있다.
이런 아까운 죽음들을 목격한 우린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전히 메르스 사태를 통과하고 있는 지금, 공공병원을 늘리고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살아남은 자들의 과제’를 말하는 목소리도 들어봤다.
취재 전진식·이문영·황예랑·이완·송호진 기자, 편집 이정연 기자, 디자인 장광석, 디지털 편집 김양균 객원기자
버려진 텃밭에 마늘이 죽었다. 40일째 인기척이 없었다. 주인 잃은 전동휠체어는 먼지의 독차지. 마당에 쌓인 땔나무는 열불 같은 태양 아래 타버릴 듯했다. 6월19일 대전 유성구 ㄱ(83)씨의 집. ㄱ씨는 6월3일 숨졌고, 부인 ㄴ(82)씨는 보름 뒤인 18일 숨을 거뒀다. ㄱ씨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3차 감염으로 사망한 첫 희생자(36번째 환자)였다. 병실에서 남편 곁을 한 달 가까이 떠나지 않았던 부인(82번째 환자)도 메르스 감염 뒤 11일 만에 숨졌다. 부부가 메르스에 모두 희생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 한겨레21>은 제1066호(표지이야기 ‘마른하늘에 날벼락, 정부가 원망스럽다’)에서 ㄱ씨의 병원 의무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망자의 고통과 국가의 책임을 기록했다. 뒤이어 6월19일 오전 대전에서 망자들의 자녀 삼형제를 만나 인터뷰하고 ㄴ씨의 의무기록을 건네받았다. 기저질환이 없는 ‘평범한 시민’이 메르스 때문에 무너져간 기록이다. 보름이 지나도록 아버지 장례를 못 치르던 유가족들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 넋을 잃었다. 그들한테서 “국가의 살인”이라는 말이 객담처럼 튀어나왔다.
어머니 손을 잡지 못했다
5월31일 대전 건양대병원. ㄴ씨는 남편이 격리병상으로 옮겨진 뒤 홀로 남았다. 둘째아들과 며느리·손녀, 셋째아들은 집에 별도로 격리됐다. ㄴ씨는 병원에 격리됐다. 홀로 울었다. 지난 6월9일 통화에서 그는 조카에게 말했다. “밥은 조금씩 먹어. 의사는 아직 뭐라고 안 해. 검사하는 중이야. 병실에 셋이 있어. 큰할아버지(남편) 돌아가실 때 못 봤어. 혼자 돌아가셨어. 억울해죽겠어, 갈 때도 혼자 가시고….” ㄴ씨는 더 말하지 못했다. 조카 ㄷ씨와 나눈 마지막 전화 통화였다.
이틀 전인 6월7일 ㄴ씨는 메르스 양성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다음날 충남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아들·며느리를 보지 못했다. 병원 의무기록 가운데 간호기록은 ㄴ씨가 얼마나 외로워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전신 허약감 있음’이라는 표현이 매일같이 보인다. 남편을 잃은 부인은 마음을 잃었다. “아이고 전신이 다 아프지.” “식사하고 싶지 않아.” “기운이 없어.” “혼자 병실을 쓰게 돼 이상해.” ㄴ씨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 “물 좀 줘.”
유가족들은 어머니 ㄴ씨를 만나지 못했다. 그 손을 잡지 못했다. 오직 전화 통화만 가능했다. 마지막 통화는 숨지기 하루 전인 6월17일이었다. 그날 오후 둘째아들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병원 간호사실에 전화를 다시 했어요. 간호사에게 부탁했습니다. 간호사가 전화기를 어머니 귀에 대주었어요.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둘째아들은 어머니의 쾌유를 비는 기도 말씀을 올렸다.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큰아들도 이날 저녁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어머니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음….” 그게 마지막이었다.
죽음의 원인이 메르스?
ㄴ씨의 사망진단서. 6월18일 새벽 1시14분 사망. 원인이 박혀 있다. ‘(가) 직접사인: 호흡기능 부전, (나) (가)의 원인: 중동호흡기증후군’. 유족들은 동의할 수 없다. 호흡기능 부전의 원인은 중동호흡기증후군. 중동호흡기증후군의 원인은? 사망진단서는 거기서 멈춰 있다. 의학은 국가를 추궁할 수 없다.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대목이다. “우리 어머니는 순수하게 피해자예요. 아무 병도 없이 건강하셨어요. 그러니까 한 달 내내 아버지 간병을 했죠. 건강하신 분이 살인당한 거예요. 살인은 국가가 한 것입니다.”
ㄴ씨는 지난 5월9일 집을 나섰다. 감기가 좀체 낫지 않는 남편이 대전 건양대병원에 입원하던 날이다. 그날 이후 노부부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사이 버려진 텃밭에 마늘이 다 죽었다. 세균성 폐렴으로 치료받던 남편의 병실에 5월28일 오후 낯선 환자가 들어왔다.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였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다. 출입문 바로 왼쪽에 있던 남편의 병상에서 보면 그 사람은 건너편 10시 방향 병상에 누웠다. 둘째아들이 그에게 식판을 올려주고 식사를 권하기도 했다. 대화도 종종 나눴다. 그 사람은 5월31일 16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가 됐다. 둘째아들은 지난 6월14일 자가격리 기간이 끝났지만 부인·딸과 떨어져 지금도 오피스텔에서 홀로 지낸다. “정부에서는 메르스 잠복기가 14일이라지만, 믿을 수 없어요.”
정부는 ㄴ씨의 사망을 축소·왜곡까지 했다. 중앙메르스대책본부는 6월18일 오전 낸 보도자료에서 ㄴ씨의 기저질환이 있다고 밝혔다. 백내장 양안 수술. 브리핑 자리에서 기자들이 추궁하자 말을 바꿨다. “82번 환자분은 우리가 추가로 확인한 것은 고혈압이 있으신 것으로 되어 있고요. 백내장 수술은 기저질환이라고 얘기하긴 어렵습니다.”(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 거짓이다. 6월8일 오전 대전 건양대병원에서 충남대병원으로 옮겨진 뒤 이뤄진 초진 기록에는 ‘고혈압 과거력 있음’이라고만 명시돼 있다. 당시 혈압은 110/70mmHg였다. 일반적으로 정상 혈압은 120/80mmHg다. 당뇨도 없었다. 유가족들은 어머니 ㄴ씨의 백내장 수술 사실도 처음 듣는 말이라고 했다.
몰염치한 보건소·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