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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05-14 18:38

 

일찍이 윤한봉 형이 5·18 정신으로 정식화한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특히 광주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이 정신에 비추어 광주는 지금까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출범조차 하지 못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박근혜 정권 실세들에겐 접근하지 못한 성완종 메모 관련 검찰 수사, 미-일 간 신밀월 체제 아래 총체적 위기를 맞은 한국 외교,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참담하게 모욕한 박상옥 대법관 인준, 청와대와 친박세력에 의한 공무원연금 타협안 파기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의 정치-사회-경제-외교-법조의 어느 부문도 총체적 난맥상이라는 말을 피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를 언제 끝낼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 더 우려되는데 시민들에게 좌절과 체념을 안겨줌으로써 탈정치화로 나아가게 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희극적인가, 비극적인가, 국회 의석 130석을 가진 야당은 막말 파동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수구언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언론조차도 왜곡된 대의민주주의 아래 스펙터클로 남은 정치를 강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변화의 주체와 동력의 가능성을 예의 주시해 찾아내 시민사회에 알리고 북돋움으로써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의지를 가진 기자와 언론인들은 드물고 동정보고자들이 그들을 대신하고 있는 탓이 크다. 동정보고자들이 현실정치인들의 동정을 보고하는 것을 자신의 책무로 알고 그런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은 불가능으로 마감된다. 막말 파동을 비판한다고 언론이 크게 보도하지만 그 주인공들이 시민사회로부터 비난받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그들이 정치의 주인공인 양 부각되는 게 스펙터클 정치의 작동 방식이다. 비판언론조차 기득권 정치의 매트릭스에 갇힐 위험이 여기에 있는데, 가령 구시대의 ‘동교동계’가 아직도 호남 지분을 주장하는 데에는 물러날 때에 물러날 줄 모르는 그들의 염치없는 노욕도 문제지만 이와 같은 스펙터클 정치의 매트릭스에 갇힌 언론의 방조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권이 국정의 온갖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요인에서도 이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나에겐 최근 <한겨레>에서 읽은 기사 중에 서울특별시가 지방정부 최초로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세웠으며 이 노동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중고등학생은 물론 공무원의 ‘노동교육’을 대폭 강화한다는 뉴스가 가장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종진 연구위원이 ‘왜냐면’에 기고한 기사였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만 초중고 과정에서 두루 배우는 ‘사회’ 교과목에서 자본주의에 관해, 노동자의 정체성에 관해, 노동운동의 역사에 관해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이 시대의 강력한 지배이념인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 ‘일하기 좋은 나라’로 맞받아칠 줄 아는 노동자상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기사에 끌렸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5월7일 전남대에서 열린 광주시 사회통합지원센터의 개소식에 개인적으로 참석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 사회통합지원센터는 민선 6기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의 사회통합 정책에 담긴 “사회협약을 통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 구축”을 위한 실무적 지원을 하게 된다. 광주시의회의 조례와 공식적인 공모 절차를 거쳐 전남대 산학협력단에 위탁된 이 센터는 독일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통한 상생과 협력 모델 등을 연구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펴낸 바 있는 전남대 철학과의 김상봉 교수가 자원하여 센터장을 맡았다. 그는 개소식에서 자신의 포부를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회를 지속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가는 경제적 양극화가 다른 무엇보다 기업과 자본권력의 전횡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과거 군부독재를 해체하고 민주화를 이루었던 것처럼 경제의 영역에서도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의 원리를 확립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경제를 실현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한 사회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상황을 상생과 통합의 원리에 입각하여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보다 성숙한 민주적 의사결정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 역시 민주화를 앞장서서 이끌었던 광주가 떠맡아야 할 명예로운 사명일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광역지자체의 사회통합지원센터를 소개하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사회변화의 주체와 동력 형성과 그것의 구체적 실현에 대한 평소 관심에 5월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결합되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35년 전 5월, 프랑스의 공영 텔레비전은 열흘 동안 톱뉴스로 광주의 항쟁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군부의 잔혹한 진압 광경은 그곳의 시청자들에게 이렇게 묻게 했다. “광주 사람들은 이교도들인가, 소수민족인가?” 이 날카로운 물음은 동시대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는 차별과 억압의 땅, 변방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이 말이 현실이 되기를 자기암시처럼 기대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하지 않겠다.

일찍이 윤한봉 형이 5·18 정신으로 정식화한 항쟁정신과 대동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특히 광주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항쟁정신이 물리력을 가진 국가권력의 불의와 폭압에 맞선 민중의 투쟁정신을 말한다면, 대동정신은 오늘 자본에 의해 부추겨진 우리 내면의 욕망을 성찰하고 자본권력에 맞설 수 있도록 공동의 가치와 관계를 확장하여 더불어 인간답게 살겠다는 정신이라고 하겠다. 이 정신에 비추어 광주는 지금까지 다른 지역에 비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노사간 상생과 협력의 전제는 노동자 사이의 연대에 있으며 협상력도 그 힘에 비례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는 한국 땅에서 무너진 지 오래다. 자본권력은 노동을 ‘포섭된 자’와 ‘배제된 자’로 분리하여 서로 적대하게 함으로써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 있다. 주인보다 마름이 더 밉다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자신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 완충지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최근에 <노동여지도>-노동운동가들은 물론 지역활동가들의 일독을 권한다-를 펴낸 박점규는 “흑백필름 시절 모두 같이 ‘공돌이’였던 울산의 노동자는 이제 중대형 아파트에 살며 그랜저를 모는 ‘직영계급’, 소형 임대주택에서 아반떼를 타는 ‘하청계급’, 이 공장 저 공장 떠돌아다니는 ‘알바계급’으로 나뉘었다”고 말한다. 광주의 노동 분할이 울산처럼 노골적이진 않겠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는 모범적인 노동조합으로 꼽히는 군산의 상용차 공장 타타대우를 배워야 할 것이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동조합 집행부는 수년 동안 조합원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는 의지를 보여 왔다. 노동자 연대를 위한 정신적 자산이 될 것이다.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

지자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있어서도 광주광역시는 서울특별시에 뒤떨어지며 기초단체에서도 경기도 성남과 부천에 뒤떨어진다. 전국 7개 지하철공사 중 광주도시철도공사의 간접고용 비율이 가장 높다. 어느 노동운동가는 자동차 100만대 밸리와 관련된 일자리는 현대기아 자본과 중앙정부의 판단과 영향이 작용하지만 광주도시철도공사의 19개역 중 민간에 위탁된 17개 역의 비정규직 역무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광주시의 의지만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의사이며 시민운동가 출신인 윤장현 광주시장에게 요청한 셈이다. 결국 광주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관건이다. 김상봉 센터장은 이렇게 말한다. “몇 발짝을 가더라도 제가 움직인 발자국이 그다음, 다음다음 분들이 가는 ‘먼 걸음’을 위한 튼튼한 디딤돌이 되겠다.”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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