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입력 2016.02.26. 10:06   

[한겨레]

서울 마포구 상수동 이리카페가 없어질 수도 있다라는 소식을 전한 순간, 그는 잠시 놀라는 듯 했다. 잠시 침묵하는 듯 하던 가수 하림씨는 이리카페의 추억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다.

“거기는 저절로 회의가 만들어지던 곳이었어요. 기획해서 회의를 한 게 아니라, 그냥 대화하다가 저절로 회의가 만들어지던 곳이죠.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매일 회의했어요. 일이 없어도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같이 하고…. 살아있는 예술활동을 하는 곳? 이른바 ‘커뮤니티 아트’를 할 수 있는 살아있는 현장이었어요. 연습실로 쓰기도 했어요. 예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악기 연주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합주도 하기도 하고. 아마추어와 프로 경계없이 예술가라는 점 하나만으로 서로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에요.”

수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지, 이야기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25일 오후 이리카페에서 만난 김상우 대표는 이곳에 대해 “커다란 평상 같은 곳”이라 표현했다. “각자의 방에 들어가 각자 생각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와서 걸터앉아 편히 얘기를 나누고, 그것이 경솔해 상처를 받는 일도 있겠지만, 서로 상관하고 위로하는 그런 곳.”

이리카페는 커피나 음료수를 파는 상업공간이면서도, 동시에 홍대문화를 만들어온 하나의 ‘산실’과도 같은 곳이다. 지난해 한 고교 3학년 학생은 매일 이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시를 썼다. 김 대표는 이곳을 자주 찾는 김경주 시인을 소개해주기도 했고, 시를 쓰면 한 쪽 벽에 붙여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읽어볼 수 있게 했다.

이리카페는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장소로도 이용됐다. 카페 한쪽에 암막을 설치해 영화관을 만들어 독립영화 예술가들이 스스로 입장료를 받거나 오징어·땅콩을 팔 수 있게 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나도 예술을 해봤고, 그래서 다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화가들은 카페 곳곳에 그림을 그렸고, 사진가들은 이 카페 벽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자유분방한 홍대문화를 만들어낸 힘은, 이렇게 작은 일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의 힘에서 나왔다. 도시 속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은 그 자체로 도시의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이곳은 또 다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건물주가 3월께 바뀌게 되면, 이리카페는 이곳에서 쫓겨나거나, 임대료가 급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뜨는 거리’가 되면 외부의 투자자가 들어와 건물을 매입하고 건물주 교체가 이뤄진다. 젠트리피케이션 1단계다. 이어 새 건물주는 건물을 사기 위해 들인 투자금을 만회하기 위해 임대료를 대폭 올려버리고, 그 과정에서 세입자는 바뀌게 된다.

이리카페가 있는 와우산로3길은 지금 상수동에서 가장 ‘핫한’ 골목이지만, 처음 이곳에 문을 열었던 2009년 8월에는 조용한 주거지였을 뿐이다. 그때가 어쩌면 홍대가 상수로 확장되는 첫 시작점이었을지 모른다. 이어 상수역에서 이 골목길까지 10여개의 카페가 생겼고, 7년 만에 2~3개만 남기고 모두 술집으로 바뀌었다. 5년 만에 젠트리피케이션의 모든 단계를 거친 셈이다.

그렇게 빠른 변화 속에서 임대료도 급등했다. 2009년 월 235만원(보증금 2000만원)이었던 임대료는, 지금은 월 380만원에 이른다. 김 대표는 “건물주가 2014년에 대폭 올렸어요. 지금도 허덕이고 있는데, 앞으로 임대료가 더 오르면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서교동에 처음 문을 열었던 이리카페는 2009년에도 건물주에 의해 한 차례 쫓겨난 이력이 있다. 홍대에서 상수로 이어지며 떠오른 상권은, 홍대에서 상수로 바톤을 잇듯 절정에 이르고, 곧 쇠퇴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도시의 숙명’이라고 하기에는 잃는 것이 너무나 크다. 과거의 기억과 추억을 담고 있는 공간이 사라지면, 삭막한 도시인의 마음 한 켠을 달래줄 위안의 장소가 사라지게 된다. 김 대표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그는 서교동에서 쫓겨난 뒤의 일을 떠올렸다.

“건물주가 카페를 하고 싶어하는 조카가 있다며 내보냈었어요. 상수동으로 옮기고 나서도 한동안 그곳에 가봤어요. 손님으로 가서 커피도 시켜보고, 인테리어도 구경하면서 당시의 기억도 되돌아보기도 했어요. 지금은 옷가게로 바뀌어서 그런 기억을 돌아볼 수도 없게 됐죠. 지금 이곳이 문을 닫게 되면 손님들도 그럴 것 같아요. 섭섭해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다른 곳과는 달리 다 같이 만들어온 장소니까요.”

그래서 이리카페는 조만간 단골손님들을 모아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솔직히 이런 생각도 해요. 이것도 놀이라고 생각하고, 아직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리카페 답게 대처하고 싶어요. 손님들도 그걸 원할 것 같아요.”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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