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7월 중순까지 진도경찰은 국민보도연맹원 등을 예비검속 하여 관할 지서를 거쳐 진도경찰서에 구금한 후 7월 17일 진도군 관내 바다에 빠뜨려 희생시켰다.

 

 『진도군지』는 “7월 중순 진도보도연맹원 10여명(『진도군지』, 진도군지편찬위원회, 2007, 271쪽.)을 경비정과 ‘진도환’에 싣고 서쪽바다로 가서 총살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고군면 오산리 출신의 헌병 조씨는 예비검속 된 연맹원들을 고자골 앞 바다(군내면 해창리)에 돌을 달아 수장시켰다고 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진도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던 이창규가 후퇴하던 진도경찰에 의해 진도군 인근 바다에 수장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희생규모는 더 컸을 것이나 더 이상 조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