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수복 후 장흥에는 유치면 보림사계곡으로 피신한 인근 지역 주민들이 경찰토벌작전에 의해 많은 피해가 있었던 사실이 확인된다. 이로 보아 경찰서 및 각 지서에서도 적지 않은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확인된 피해 사실은 장흥경찰서, 대덕지서, 장평지서, 안양지서에 의한 것이다.


장흥경찰서로 연행되어 유치장에 감금되었던 주민들이 1950년 12월 4일 장흥읍 남외리(장흥서초등학교 부근) 다리 밑에서 희생당했다. 당시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는 주민은 부동면 평화리 고재갑이며 함께 희생된 주민들의 규모와 신원은 더 이상 확인되지 않았다.


대덕지서는 1951년 3월 15일 옹암리 박종신 등 마을 주민 5명을 내저마을 고개에서 총살했다. 희생자들은 경찰이 지정한 초소에 야경을 서기위해 나갔다가 연행된 것이었는데,  박은수를 제외한 5명이 내저마을 고개 논에서 사살되고 박은수는 풀려났다. 이들이 희생된 이유는 국군 수복 당시 약산면의 피난민들을 배에 태워줬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장평지서는 1950년 10월 26일 옹기를 팔러 장에 가던 등촌리 김임식을 덕산고개에서 사살했다. 1951년 3월 17일에는 두봉리에서 지내다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향집이 있던 진산리로 양식과 무우를 가지러 가던 주민 2명을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안양지서는 1950년 12월 21일 안양면 모령리 방대석을 연행하여 목단마을 가둥골에서 총살했다. 당시 모령리에서는 5~6명이 경찰에게 희생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