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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05-29 19:45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대통령과 종교-종교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백중현 지음, 인물과사상사, 2014
기독교, 불교, 천주교에서 발표한 신자 숫자를 합치면 총인구보다 많다. 한국에 드라큘라가 없는 이유는 밤하늘을 붉히는 십자가 때문이다. 택시 기사가 기피하는 승객은 만취한 사람과 빨간 책(성경)을 든 사람이란다. 그래도 한반도는 최소한 종교를 명분으로 한 내전은 없는 평화로운 사회다.

한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가 가능할까? 원래 근본주의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성(聖)과 속(俗)을 명확히 구분하는, 종교 자체에 충실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실제 근본주의는 매우 정치적이다. 최근 가장 우려스러운 기독교 근본주의 경향은 “동성애 반대는 당연한 인권”이라는 집요한 시위세력,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위시한 이들이다.

<대통령과 종교>의 내용은 부제와 같다. ‘종교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저자 백중현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편향 없는 충실한 보고서다. 구한말부터 이승만,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통해 성장한 종교와 종교를 통해 성장한 권력”의 ‘정교’(政敎)를 다룬다. 다만, 유신 정권이 기독교와 합작으로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몰아 그들의 병역/집총 거부를 가혹하게 탄압한 부분이 빠진 점은 아쉽다.

건국과 민주화, 교육, 복지 영역까지 기독교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들의 성장, 아니 비대함이 친미-산업화-반공의 최전선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새마을운동 노래의 첫 구절은 기독교의 새벽 기도와 닮아 있다.(91쪽) 이 책에는 새삼 놀라운 일로 가득하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호남에서 2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었다.(246쪽) 장로님이 지역 차별 현실을 이긴 것이다. 이 땅에서 종교의 역할은 국가보안법과 비슷하다. 종교(宗敎)는 글자 그대로 ‘으뜸 가르침’. 그 가르침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권력의 화신이 된 일부 대형교회 현상은 사유를 금지시킨다.

1958년 가족 다섯명이 모여 가정교회로 시작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0년대 10년 동안 16배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0년 현재 재적 교인은 78만명.(92쪽) 나는 세계 최대 교회에 대한 감격이나 비판 이전에, 지역 공동체로서 교회의 적절한 신자 수는 몇 명인가 묻고 싶다. 이 교회는 기이하다. 세계사에 남을 것이다. 하이브리드 희비극의 결정판, 전두환 정권의 ‘국풍 81’. 학살로 집권한 이들의 콤플렉스는 정감록, 토정비결, 증산사상을 민족문화로 승격시켰으나 연인원 천만명 참석에도 불구하고 “민족문화 창달”보다는 대중가수 이용의 탄생을 최대 성과로 1회로 끝났다.(127쪽)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책을 읽다가 ‘노무현’과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적 약자(야권)의 ‘자발적 무지’, 강자의 정체성의 정치(지역주의)와 약자의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인 민주당 분당 사건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 같은 인물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의 캐릭터는 우리 사회의 가능성이었다. 노무현의 당선은 일본의 진보 세력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들은 “한국은 미래가 있는 나라”라며 부러워했다. 연줄 없는 고졸 대통령. 일본은 지방의원부터 국회의원, 총리까지 몇몇 가문이 독점하는 철저한 세습 사회다. 그들은 아버지로부터 자금, 지명도, 후원회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우리 집 식구는 모두 천주교 신자고 나는 유아세례까지 받았지만 모태 냉담자다. 분위기를 봐서 무교와 가톨릭 사이를 적당히 왕래하는, 좋은 게 좋은 기회주의자다. 나는 아래 구절에서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노무현은 세례받은 천주교인이었지만 종교에 열성적이지는 않았다.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을 때, 1986년 부산에서 송기인 신부로부터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얻었지만 성당에 자주 못 나가서 종교란에 무교라고 쓴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하느님을 믿느냐’ 물었고, ‘희미하게 믿는다’고 답했다. 추기경이 확실하게 믿느냐고 재차 묻자 노무현은 잠시 고개를 떨구며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프로필 종교란에 ‘방황’이라고 쓰겠습니다.’”(211쪽)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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