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25일경 인민군이 경남지역으로 진입하려 하자 통영경찰서, 특무대(CIC), 해군 G-2, 헌병대 등이 통영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들을 미리 잡아들여 통영경찰서 유치장에 감금하였다. 그 뒤 분류를 거친 110~250명의 국민보도연맹원들이 1950년 7월 26일과 27일 통영경찰서 소속 경찰들에 의해 광도면 안정리 무지기고개 등에서 총살당했다.

 

또한 예비검속의 성격으로 항남동 헌병대 멸치창고에 갇혀 있던 주민들은 인민군 점령 직전 후퇴과정에서 희생되었다. 인민군이 통영을 점령하기 전에도 좌익혐의를 받던 주민들이 항남동 멸치창고에 갇혀 있었다. 16일경 인민군이 통영을 점령하려 하자 창고에 있던 주민들 중 일부는 풀어주고 일부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살해하였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거제로 피난을 가던 김용민은 항남동 멸치창고에서 부친 김철호의 신음소리를 들었는데, 국군 수복 후 피난에서 돌아와 확인해 보니 1950년 8월 16일 살해당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한편, 한산지서장이 알려준 것에 따르면, 한산면의 김상관 3형제는 1950년 8월 15일 명정동 56번지에서 희생되었다.

 

출처, 진실화해위원회, 통영 거제 국민보도연맹 등 희생사건 보고서, 2009 / 김기진 지음, 국민보도연맹, 역사비평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