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1월 경 남원지역에 배치된 국군 제11사단에 의해 주민들이 집단희생된 사건은 대강면 강석리, 주천면 고기리 덕치리, 산내면 백일리에서 확인되었다. 4개리에서 확인되는 희생자만 150여 명에 달한다.

 

[대강면] 강석리 : 1950년 11월 17일(11월 29일_도의회) 대강면 강석마을 주민 90여 명이 4개 장소에서 국군 11사단에게 집단살해당했다. 1950년 11월 17일 새벽 남원에 주둔해 있던 11사단 500여 명(1개 대대 병력)이 그럭재를 넘어 무차별 총격을 가하면서 강석마을을 점령했다. 5백여 명의 주민들을 마을 앞 어귀 논바닥에 집합시키고 통비분자를 색출한다며 주민들을 분류하였고 이 중 90여 명을 일본도와 소총으로 무참히 살해했다. 희생자들 중에는 50~60세 된 노약자 19명이 있었으며 한명 씩 끌고 나가 일본도로 목을 내리쳤다. 주민들이 살던 집은 모두 소각했다. 주민들은 이 국군을 11사단 205부대로 알고 있었으며 국군토벌부대가 전날 밤 많은 총소리를 냈다고 기억 하였다. 학살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주민 김점동은 한 장교가 일본도로 목을 세 번이나 내리쳐 목이 절반 가까이 잘렸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고 한다.(90여 명 희생자 중 55명 확인)

『한국전쟁사료』 제60권 296쪽에 제11사단 전차공격대대가 1950년 11월 16일 (남원) 금지면 방면으로 출동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들이 사건의 가해자로 판단된다.

 

[주천면] 고기리 : 1950년 11월 20일(11월 19일 -전북도의회) 11사단 국군이 총을 쏘며 마을에 진입하였으며 이 때문에 일부 주민들이 집에 있다가 희생당했다. 살아남은 주민들 30여 명이 마을 앞 어귀에서 희생당했고 300여 채의 가옥이 소각되었다. 17명의 명단이 전북도의회 보고서(1994)에서 확인된다.

덕치리 : 1950년 12월 29일(전북도의회) 30여 명의 주민들이 11사단과 남원경찰서로 구성된 군경토벌대에게 희생당했다. 28명의 희생자 명단이 전북도의회 보고서(1994)에서 확인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주천면에서 희생된 주민 60여 명 중 32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한국전쟁사료』 제60권 273쪽에 제11사단 전차공격대대가 1950년 11월 20일 남원 주천면 내기리 고촌리 전과 작전기록 중 ‘지방세포 32명을 사살’했으며 ‘세포원 가옥을 소각’했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상황과 일치한다.

 

[산내면] 백일리 : 1950년 12월 19일에는 산내면 백일리에 진입한 국군은 마을 주민들을 향해 “손 들어”라고 했으나 청각장애를 갖고 있어 이를 알아듣지 못했던 김동일이 그 자리에서 사살당했다. 국군 11사단이 사건 당일 산내면 백일리에 출동한 사실이 작전 기록에서 확인된다.

 

<출처>

진실화해위원회, 「남원지역 민간인희생 결정서」,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2, 69~118쪽.

전북도의회, 「6·25양민학살진상실태조사보고서」(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