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

 

예로부터 화순은 산수가 아름답고 인심이 넉넉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유서 깊은 고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살기 좋은 고장조차 전쟁을 전후하여 벌어진 참혹한 갈등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화순에서는 전쟁 전부터 20연대 국군에 의한 피해가 많았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1949년 10월 아산국민학교로 소집된 북면 주민 50여 명이 무참히 희생되는 등 이미 전쟁 전 80여 명의 무고한 영령들께서 희생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전쟁이 난 직후인 1950년 7월 국민보도연맹사건도 있었습니다. 보성 예재터널에서 100여 명의 영령들께서 또 학살을 당했던 것입니다. 같은 시기 능주국민학교에서는 인민군 환영대회를 연다는 경찰에게 속아 희생당하셨습니다.

학살은 국군 수복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국군 11사단 20연대와 이어 주둔한 국군 8사단, 그리고 화순경찰서는 춘양면, 동복면, 남면 등 화순 전 지역에서 부역자라며, 빨치산이라며 영령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 당시 200여 명이 넘는 주민들이 희생당하신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영령들께서는 6·25 전쟁이 나기도 전 이미 전쟁과 다름없는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아니 적과의 전쟁이라면 한번 싸워보기라도 했을 텐데, 이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적이 아니라 양민들을 지키고 보호할 줄 알았던 우리 경찰과 국군이 일방적으로 저지른 학살이었습니다. 왜 죽어야 하는 지도 모르고 당해야 하는 억울한 죽음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전쟁이 나도 마찬가지였고 국군이 수복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령들이시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당시 영령들께서 이승만 정부에게, 대한민국에게 적이었단 말입니까?

 

이제 일부나마 국가의 반성에 의해 진실이 밝혀졌으며 미약하나마 억울한 넋들을 달래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영령들이시어,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시작임을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영령들을 부인하는 자들과 다시 이웃을 증오하게 만들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관용과 화해의 힘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 한반도의 평화로운 모습과 통일된 미래를 보여드리겠나이다.
영령들이시어,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소서.

 

2011년 10월 5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 이이화 김영훈 임태환 오원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