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

 

영령들의 뼈로 탄현의 온 산을 뒤덮었던 1995년 10월을 기억합니다.
“내가 이렇게 죽었노라”라는 영령들의 소리 없는 외침은 진실을 숨기려던 어떤 자들에겐 공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공’이라는 거짓 이념 속에 억눌려 살았던 민중들에겐 거짓에 대한 분노이자 진실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인권의 척도이자 평화의 새로운 기준이었습니다.

 

2011년 9월 오늘,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영령들을 영면 시켜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령들께서는 의과대학 시체해부실에서 16년 동안 잠들지 못하셨습니다. 이제 납골시설로 옮겨 잠시 휴식을 취하시게 되었습니다. 길었던 그 동안의 여정을 보면서 그 나마 나아진 것이라고 하겠지만 이도 결국 임시조치일 뿐입니다.

 

아직도 영령들의 억울한 죽음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영령들이 희생당한 장소를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자는데 이에 반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난 세월을 전쟁이라는 공갈로 협박하며 살아왔던 이들은 평화의 분위기도 못마땅해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앵무새 같은 주장이 고양지역의 공동체를 파괴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령들께서 총탄에 부서진 육신으로 후손들에게 경고하신 것이 있습니다. 영령들의 팔을 묶었을 160개의 철사 줄과 영령들의 몸을 찢는데 쓰였을 171개의 탄피가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영령들께서 국가에 의해, 전쟁을 빌미로 희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전쟁 전 고양지역에서도 이승만 정부의 분단정책으로 인해 작은 갈등들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로 헤를 끼칠 정도의 증오는 없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국민을 저버렸던 이승만 정부는 9․28수복 후 패전의 책임을 국민에게 물었습니다. 피난하지 말라던 정부의 말을 믿은 고양지역 주민들은 3개월만에 부역자가 되어 대한민국 경찰의 총탄에 죽어야 했습니다. 증거도 없이, 재판도 없이 금정굴에서, 한강변에서, 성석리 뒷골에서, 화전리 계곡 등에서 즉결처분으로 죽어야 했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이웃 공동체는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무고한 사실을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던 치안대원, “저 사람은 나를 살려준 사람이다”라는 말 한마디 못 했던 태극단원이 있었습니다. 이웃들은 무고하게 끌려가는 영령들을 보면서 ‘나도 끌려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 희생되어야 내가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이승만 정부가, 고양경찰서가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국민을 기만하고 먼저 피난했던 이승만 정부는 누가 부역자인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런 이승만 정부가 수복 후 사죄하고 관용을 베풀기는커녕 오히려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한민국은 고양지역의 공동체사회를 편 가르고 ‘우리’가 아닌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희생양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2007년 대한민국은 영령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사죄의 뜻을 밝혔습니다. 이제 더디지만 후속조치를 위한 노력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영령들께서 학살당하신 곳이 무엇이 좋다고 다시 돌아가시려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곳이 영령들께서 돌아가신 곳임은 변함없고, 또한 후손들이 영령들의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범국민위는 영령들께서 영면할 수 있으며 또한 후손들이 이 비극을 잊지 않도록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평화공원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억울한 죽음을 규명해 나갈 것입니다. 배상과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 투쟁과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유해 발굴, 과거사 재단 설립 등 남겨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영령들이시어,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와 함께 투쟁해 주소서.

 

2011년 9월 24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 이이화 김영훈 임태환 오원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