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주년 4·3희생자추념식 봉행..비 날씨속 유가족 오열

노컷뉴스 | 제주CBS 박정섭 기자. 문준영 수습기자 | 입력 2016.04.03. 11:31


이젠 잊혀질 법도 한데, 이젠 사그라질 만도 한데 80대 노모의 슬픔은 그 날과 다를 바 없는 진행형이다.

문드러질대로 문드러진 가슴에 턱하니 멈춰있는 고통의 기억을 씻어내리려는 듯 부슬부슬 내리는 빗줄기가 비석을 타고 흐르지만 노모의 시간은 그 날 이후 정지상태다.


"그 때 귀신이 함께 (나를)잡아갔으면 이런 억울함 느끼지도 못했을 텐데…"


눈물 한번 삼키고 바라본 하늘. 그 날도 이렇게 날씨가 스산했을까. 김용순 할머니의 68번째 4·3이 또다시 깊은 슬픔에 목놓아 젖고 있다.

(사진=박정섭 기자)
(사진=박정섭 기자)

4·3 영령의 넋을 달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제 68주기 제주4·3희생자추념식'이 유가족과 도내외 인사 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됐다.


행정자치부가 주최하고 제주도가 주관하는 이번 추념식은 '4·3평화정신, 제주의 가치로'를 주제로 엄수된다.


국화꽃을 헌화하고, 향을 피워 올린 유족들은 당시의 아픔이 상기되는 듯 오열과 숙연함 속에 추념식을 올렸다.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세 번째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정부대표로 박근혜 대통령이 불참한 대신 황교안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사진=박정섭 기자)
(사진=박정섭 기자)
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제 58주기 4·3위령제에 정부 대표로 참석, 4·3영전에 헌화와 분향하고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돼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며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줘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추념식은 국민의례와 헌화 및 분향, 경과보고 영상,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인사말, 원희룡 제주도지사 인사말, 황교안 국무총리 추념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황교안 총리는 추념사를 통해 "정부는 국민 행복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계층간, 세대간, 이념간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실현하는 데 진력하겠다"며 "제주도민의 관용과 통합의 노력이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한 공동체로 만드는 데 훌륭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 총리는 '사실조사를 거쳐 논란과 갈등을 없애는 게 화해와 상생의 정신에 부합한다'며 최근 논란이 된 4·3희생자 재심사 동조 입장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인사의 말씀을 통해 "4·3의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올곧게 계승해 제주를 자유와 공존이 넘치는 진정한 세계평화의 섬으로 만들고, 미래를 향해 새롭게 도약해 나가야 한다"며 "이게 선열들의 희생을 값지게 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사진=박정섭 기자)
(사진=박정섭 기자)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일부 극우 보수단체가 근거없는 사실을 유포하며 화합의 분위기를 훼방하고,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유족과 제주도민의 아픔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올바른 제주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이 온전히 이뤄질 때까지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게 살아남은 자의 당연과제"라고 말했다.

4·3 희생자 1만 35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행방불명인 표석에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헌화의 발길과 오열이 끊이지 않았다.


4·3 당시 언니를 잃었다는 김유생 할머니(84)는 "아무런 이유없이 언니가 희생당했고, 시신도 수습 못했다"며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비석도 봐도 너무 억울하고 눈물만 흐를 뿐"이라며 흐느꼈다.


이날 4·3희생자 추념식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 국민의당 공동선대위원장 이상돈 교수, 정의당 김세균 공동대표가 참석해 유족들의 아픔을 달랬다.


20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지만 각 당 후보들은 이 날 하루 경건한 마음으로 제주4·3 희생자의 영령을 위무하고, 4·3의 교훈을 기억하기 위해 거리홍보와 차량유세 등 공식선거운동을 중단했다.


일본에서도 오는 23일 도쿄 니뽀리 서니홀에서 4·3 68주년 추도식이, 오사카에서는 24일 오사카 시립히가시나리 구민센터에서 제주4·3사건희생자위령제가 봉행된다.


하지만 이같은 범국민적 추모행사 속에서도 일부 극우세력은 4·3사건 희생자 1만4231명 가운데 남파 간첩이 포함됐다며 53명에 대한 재심사를 요구하는 등 어김없이 4·3흔들기로 갈등을 조장하며 유족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주고 있다.


[제주CBS 박정섭 기자. 문준영 수습기자] pjs011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