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입력 2016.01.06. 15:09


[헤럴드경제=한석희 기자] “1학년이었다.…1학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아예 왈칵 흘렸습니다. 그의 양손은 연신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는데 바빴습니다. 대통령의 눈물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역사적인 총기규제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샌터바버라 대학생들과 콜롬바인 고등학생들에 이어 코네티컷 주 뉴타운 초등학교 학생들을 일일이 열거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감정이 북 받치는 듯 몇 초간 말을 멈췄던 대통령의 눈가엔 서서히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은 계속해서 오른 손으로 왼쪽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또 다시 왼쪽 손으로 오른쪽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기를 반복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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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초등학교 1학년생 20명을 생각하면 미칠 지경”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왈칵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그런 대통령의 눈물이 논란의 와중에 있습니다.


댄 그로스 총기폭력예방캠페인 회장은 트위터에 “대통령이 눈물을 훔쳤다. 나도 그랬다. 내가 지금까지 본 최고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적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의 모습은 총기사건으로 슬픔에 젖은 보통 미국인의 모습이었다. 눈물 만큼 정서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식스센스(six sense)도 없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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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방송은 “감정적인(emotional) 대통령은 총기 규제에 대해 모든 수사학적 기술을 다 썼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마디 말 보다 눈물로써 총기규제 행정명령을 발동해야 하는 이유와 당위성을 모두 표현했다는 찬사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대통령의 눈물도 달리 보이나 봅니다.


미국 보수 진영은 일제히 오바마 대통령의 눈물을 “가식의 극치”라고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보수 정치 평론가 벤 사피로는 자신의 트위터에 “오바마가 총기 규제에 관해 얘기 한다. 오바마의 눈물은 암을 치유하고 총기 폭력도 없앤다”고 비아냥 댔습니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 진행자 토드 스턴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총기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을 이용해 눈물을 닦았다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정치 잡지 내셔널 리뷰의 짐 게라티 평론가도 트위터에 “최근 문명사에 일어난 최고의 난폭 행위”라면서 마늘을 다지는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다진 마늘처럼 파멸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대통령의 눈물은 ‘최고의 감성적 수사’가 되기도 하지만 ‘정치적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눈물’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은 우리로선 낯설기만 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대통령은 눈물도 없다’는게 보통 한국인의 생각입니다. 아무리 슬퍼도 가장이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혼자 애써 담배를 피우며 눈물 찔끔 흘리는게 우리네 모습인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일견 맞는 듯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도 사람입니다. 아니 대통령도 한 사람의 국민입니다.


대통령도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아니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정도로 미치도록 슬프다면 울어야 합니다. 그런 대통령의 눈물을 “나약하다”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대통령은 울 줄 알아야 합니다. ‘가식의 눈물’이어도 좋습니다. 진심으로 국민을 움직이게 하는 게 진짜 대통령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도 따지고 보면 ‘희로애락’에서 출발합니다. 국민들과 함께 웃고 울고하는 게 진짜 정치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눈물이 그리워집니다.


/hanimom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