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입력 2016.02.01. 21:46


[한겨레]부산지법, 위자료와 별도로 지급 판결


“정부 불법행위 배상 의무”
정부쪽 ‘소멸시효 완성’ 인정 안해

“희생자 55살까지 벌 수 있던 금액
농촌 일용 노임단가 적용해 줘야”


6·25전쟁 때 무고하게 희생된 국민보도연맹 유가족들한테 정부는 위자료와 별도로 재산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민사9부(재판장 정철민)는 1일 경남 양산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유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재산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희생자들이 살아 있었다면 만 55살까지 벌 수 있었던 재산을 정부가 유족들한테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과 군인들은 단지 국민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이유와 적법 절차 없이 희생자들을 구금한 뒤 살해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따른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 이 때문에 희생자들은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해 희생자들이 입은 재산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지급 대상은 사건 뒤 살아있었다면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희생자로 제한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경남 양산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지급해야 할 위자료로 희생자에겐 1인당 8000만원, 희생자 유족에겐 400만~4000만원을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1950년부터 1965년 사이에 정부의 불법행위로 인한 수입 손실에 한정해서 위자료를 산정했다. 하지만 부산지법 민사9부는 손해배상청구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재산상 손해 규모를 원고들이 청구한 1970년 이후 희생자들이 만 55살이 되는 날까지 농촌 일용 노임 단가로 계산했다.


희생자 유족들의 소송대리인인 장운영 변호사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정부의 명백한 불법행위였는데도, 위자료가 희생자 기준으로 8000만원에 불과하다. 과거 정부의 조작 사건 피해자들에 견줘 위자료가 너무 낮게 책정됐다고 생각해 소송을 냈다”고 말했다.


이승만 정권은 1949년 6월5일 좌익 사상을 통제하려고 좌익 계열 전향자를 중심으로 반공단체인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다. 이 단체는 반공을 강령으로 삼은 관제단체로, 공무원들에 의해 사상과 관계없이 수십만명의 민간인들이 반강제로 가입됐다. 하지만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정부는 이들이 북한과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해 무차별적으로 붙잡아 재판 없이 살해했다.


1950년 8월 경찰과 군인은 경남 양산의 국민보도연맹원을 구금해 같은 해 8월9~22일 집단 사살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9월8일 경남 양산 국민보도연맹원 97명을 희생자로 확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과거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불법적인 양민학살 행위로 인정하고 유족들한테 공식 사과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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