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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6-02-23 21:09수정 :2016-02-24 10:51

 

지난 7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인터뷰어이자 30년 지기인 이진순 희망제작소 부소장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놨다. 둘은 똑같은 해에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했고, 학생운동을 하다 구로3공단에 위장취업을 했던 전력을 공유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7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인터뷰어이자 30년 지기인 이진순 희망제작소 부소장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놨다. 둘은 똑같은 해에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했고, 학생운동을 하다 구로3공단에 위장취업을 했던 전력을 공유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국회의원 은수미

“목구멍에 더러운 걸레를 쑤셔 넣은 것 같은 느낌이야.”

그에게 금배지는 긍지와 영광이 아니다. 국회의원으로 사는 것이 “죽고 싶을 정도로” 치욕적이고 부끄럽다고, 지금이 “일생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라고 그는 잘라 말한다.

“국회의원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재의 상황을) 돌파조차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한 좌절감, 무능력에 대한 자책감에 너무 힘들었어. 나 자신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부쩍 수척해지고 퀭한 얼굴을 하고 그가 말했다. 그의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있다. 20여년 전 강릉교도소 면회실에서 쇠창살 너머로.

나는 그를 오랫동안 알아왔다.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우린 같은 해 입학했다. 광주학살로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고 대학교 잔디밭에 전경이 상주하던 때였다. 두꺼운 경제학사전과 철학사전을 양옆에 펼쳐놓고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를 하며 사회과학 서적을 읽던 그는 매사 진지하고 성실했다. 긴 치마를 즐겨 입고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면서 늘 먼저 자리를 뜨던 그가 열변을 토하는 걸 처음 본 건, 사복경찰에 의한 “서울대 여학생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뒤 열린 학과 총회에서였다.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느라 책상에 손을 짚은 채 그는 성폭행 사건의 전말과 성폭행당한 친구의 괴로움을 목멘 소리로 전했다. 대학 3학년 이후 그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후 구로공단의 위장취업자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다시 몇 년이 지나서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중앙위원으로 검거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29살부터 35살까지 다른 여자 동기들이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정을 꾸리는 동안 그는 6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그를 아는 동기들의 반응은 “수미가 드디어 제자리를 찾는구나”였지만 은수미에게는 또다른 고행길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제1야당에 대한 실망감이 극에 달해 있는 시대, 노동을 화두로 국회에 들어간 은수미의 고민과 꿈은 무엇일까? 그가 지닌 상처와 좌절,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그의 희망은 우리 시대 최전선의 기록이다. 지난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은수미를 만났다.

-내가 <열림>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지인을 인터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말 공교롭네. 너와 이런 이야길 하게 되다니….”

-네가 쓴 <날아라 노동>을 읽어봤어. 정치인 자서전이 아니고 완전히 노동에세이더군. 서점에서 “<날아라 노동> 주세요” 했더니 점원이 계속 못 알아듣고 “<나라와 노동>이요?” 하더라.

“(웃음) 노동이 난다는 거는 상상을 못하는 거겠지. 청년유니온 같은 단체의 젊은 친구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노동권에 대한 교과서처럼 쉽게 풀어쓴 글이야.”

정치 바꾸고, 리더십 세우고
간절한 정당 만들어야 하는데…
국회의원으로서 현재의 상황
돌파 못하는 좌절감, 자책감
나 자신이 혐오스러울 정도

 
노동자들 근로조건 좋아져야 할
이유는 높은 지위 아닌 ‘여가’
정치적으로 소통하고 고민하고
사색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열망을 가져야 스스로 문제해결

 
유복한 가정, 초등학생 때의 깨달음


은수미는 사노맹으로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뒤 1998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복학해 노동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한국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유형 연구>. 2005년 한국노동연구원에 입사해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분야의 전문가로 노동정책을 연구했고, 전문성과 정책입안능력을 인정받아 2012년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3번으로 국회에 들어왔다.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노동전문가다. 케이티(KT), 쌍용차, 유성기업, 삼성전자서비스 등 노조탄압과 비정규직 문제가 터지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365일 동안 320개 노동현장을 주말도 없이 찾아다니며 중재하고 항의하고 의제화했다.

-노동문제에 그렇게 몰입하는 이유가 뭐지? 노동문제 해결이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노동으로 모든 문제를 환원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세대갈등이나 지역문제, 남북대치와 환경문제 같은 다양한 이슈들을 노동문제의 틀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말하는 노동자는 일하는 모든 시민이야. 일하는 시민에게는 노동의 권리가 있고 시민적 권리가 있는데, 이 두 가지는 노동의 앞뒷면 같은 거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분리해서 봐. 내가 국정원 사태를 가지고 한동안 전국투어를 했더니 (노동)현장에 있는 사람이 ‘은 의원님, 그런 것 좀 안 하면 안 되냐’고 하더군. 자기네들은 죽겠는데 은 의원이 와서 해결을 해줘야 하는데 2주 동안 국정원 싸움을 하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정치적 민주주의가 안 되면 일상의 민주주의도 안 되는 거잖아. 근데 이 사람들이 느끼는 건 ‘우리는 애당초 아무런 권리도 없다’는 거야. 투표할 권리가 있어? 투표하려면 연차 내야 하는데. 그게 일당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난 팽목항에 갈까, 삼성전자서비스에 갈까. 이 두 가지가 맞닿아 있다는 걸 그들에게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중이지.”

-성장의 지표는 경제활동지수가 아니고 국민행복지수여야 한다고 주장해온 걸로 아는데.

“협동조합운동 같은 걸 보면 그걸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산층이야. 내가 만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런 경험조차 할 수가 없잖아. 삶이 조각조각 나 있고 한곳에 제대로 거주할 수도 없어. 협동조합은 정착민을 위한 운동이야. 여전히 대다수의 국민들은 유목민들처럼 떠돌아다니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공동의 유대, 새로운 사회를 경험하게 할 수 있을까. 근로조건이 좋아져야 하는 이유는, 단지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가’ 때문이야. 정치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여가, 고민하고 사색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여가. 자기 이웃은 어떻게 살고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주체가 돼서 고민해볼 수 있는 여가가 필요해. 그렇게 주체로서의 열망을 갖게 되면 그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거라고 나는 믿어요.”

-유복한 가정에서 모범생으로 컸잖아.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은 대학 이후부터인가?

“아니, 실은 초등학교 때부터인 것 같아. 아버지가 군인이셨어. 해군사관학교 나와서 해병대 중령으로 제대를 하셨지. 신림동 우리집은 100평이 넘는 담쟁이넝쿨집이었는데 내 친구들은 주로 판자촌에 살았고 고아들도 있었어. 하루는 친구 집에 가서 놀다가 장난으로 친구를 툭 밀쳤는데 벽이 부서진 거야. 판넬 같은 벽이었나 봐. 너무 미안하고 무서워서 도망을 나왔는데, 그때부터 나와 내 친구가 사는 처지가 너무 다르다, 그걸 어린 마음에 이해할 수가 없었어. 중학교 때는 짝꿍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에서 장례를 치른대서 찾아갔어. 근데 가보니 흙집에 세들어 살고 있더라고. 그런 집을 처음 본 거야. 너무 당황해서 엉겁결에 그 어머니한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는 돌아오는 길 내내 엉엉 울었지. 그러고 내 짝은 학교를 못 나왔어. 공장엘 갔겠지. 그게 참 용납이 안 되더라구. 같이 놀던 친구들인데 나는 흰 구두에 원피스 입고, 친구는 학교도 못 다니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은수미를 만든 시간들 (※클릭시 확대됩니다.)

나를 무너뜨린 짐승의 시간


엄하고 예의바른 집에서 얌전한 모범생으로 컸지만 가슴속에는 불의와 불평등에 대한 의문과 갈등이 소용돌이쳤다. 사회학과에 입학한 것도 그런 고민과 갈증 때문이었지만, 발레와 뮤지컬을 좋아하는 얌전한 여대생이 거친 학생운동에 선뜻 발을 들여놓긴 어려웠다.

-학생운동에 뛰어든 게 언제부터지?

“지식인은 양심적이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 양심을 주장하기엔 너무 무서웠어. 입학하고 5월달에 시위가 있었는데, 아마 김상진 열사 기일이었던 걸로 기억해. 검은 상장을 달아야 하는데 난 (동아리 활동도 안 하고) 혼자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과 사무실에 가서 상장을 가져다 달고 혼자서 집회에 참여를 했지. 근데 전경이 들어와서 최루탄을 쏘니까 너무 무서워서 혼자서 대운동장까지 도망을 간 거야.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날 일기에 ‘내 평생 이 부끄러움과 치욕을 영원히 검은 상장으로 달고 다니겠다’고 썼어.”

-자기규율과 통제가 너무 엄격한 것 아냐?

“강하지. 어릴 때부터 그렇게 트레이닝 받았어. 아버지가 군인이셨잖아. 그것도 해병대! (웃음) 난 먹물이라면, 혜택을 받은 자라면 자기가 하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어. 운동을 못하면 괴로워서 죽을 것 같았는데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어. 우리 가족관계가 회복된 건 가족들이 내 재판의 전 과정을 지켜본 후부터야. 우리 오빠가 그러더라고. ‘내 동생이 참 정의롭구나’ 하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게 되었다고.”

-학생운동을 했다고 해도 노동현장으로 가는 건 또다른 결단인데. 공장으로 갈 때 두려움이나 고민은 없었어?

“아니, (노동)현장을 가는 건 굉장히 자연스러웠어. 내 어릴 때 친구들이 간 곳. 그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했고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사노맹 얘기를 좀 해볼까? 은수미 얘기가 나올 때마다 과거 사노맹이었고 좌빨이고…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사노맹 활동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지?

“표현은 좀 과격했지만 사노맹이 정책적으로 꿈꿨던 게 실은 ‘노동 있는 복지국가’ 수준이었다고 생각해. 나는 지금도 ‘복지국가의 핵심이 노동권이고, 평등을 원리로 하는 성장이 필요하다’고 믿는데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 데는 사노맹의 경험이 클 거야.”

-사노맹은 실패한 건가?

“실패했지.”

-조직이 깨지는 과정에서 상처가 컸지?

“가장 힘들었던 게, 나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거였어.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한 20일 받는데, 원래 우리가 약속한 게 묵비권을 행사하자는 거였어. 근데 일주일쯤 버티다 무너졌어.”

-고문이 심했구나.

“사람을 밟는 거지. 굴리면서 밟든가 가랑이 사이를 기게 하든가, 물고문에 손가락 꺾기… 그때 허리를 다쳐서 허리를 내내 못 썼어. 21명이 3교대로 잠을 안 재우면서 취조를 했어. 근데 어느 날 그 21명이 다 철수를 하는 거야. 그리고 세 명의 남자가 들어왔어.”

-정규 조에 없던 사람들이?

“모르는 얼굴들. 그때 우리한테 군복 같은 걸 입혀놨었는데 지하2층으로 끌고 가서는 머리채를 끌고 벽에다 치는데 단추가 뜯기고… 알몸이 드러났어. 세 남자는 술에 취해 있었고. 성폭행을 하겠다는 명백한 암시였지. 너무 무서웠어. 내가 거기서…무너졌어.”

-넌 지금껏 그런 얘길 한 적 없어.

“얘기 못했지. 그 일이 있고 타협을 한 게 뭐냐면 내가 스스로 불지는 않지만 다른 동료들이 얘기한 것에 ‘예스’는 한다…였지. 그게 두고두고 스스로 용납이 안 돼서 괴로웠어. ‘너, 민주주의를 위해 죽겠다고 하지 않았냐? 근데 성폭행이 두려워서 입을 여는구나….’ 나와 친구들을 무너뜨린, 짐승의 시간이었어.”

자책감과 회한, 고문후유증으로 그는 감옥에서도 줄곧 병마에 시달렸다. 강릉교도소에서 은수미는 결핵성 종양으로 소장과 대장 사이를 50센티미터나 잘라내는 대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의 염원은 단 하나 “살아남는 것”이었다. “죽어도 저 담장 밖에 나가 죽자, 감옥에서 관을 짜는 건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 운동장도 운동시설도 없는 여사(女舍)에서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음악에 따라 하루 세 시간씩 되는대로 몸을 흔들며 막춤을 췄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몸짓이었다. 20대에 들어갔던 감옥에서 서른다섯이 돼서 출소했다.
 

그 뒤로 밀실공포증은 오래도록 후유증으로 남았지만 은수미는 결국 그 시간을 견뎌냈다.

-지금 젊은이들한테는 아무리 얘기해도 실감 못할 거야.

“그렇지. 아니, 알면 안 되지. 미래세대들이 그런 경험을 다시 하지 않게 하려고 우리가 그런 건데….”

-그렇게 혹독한 시절도 견뎌낸 은수미가 국회의원이 된 지금이 제일 불행하다는 건 무슨 말이야?

“처음 의원이 되었을 땐, 내가 생각해온 노동정책을 구현하겠다, 그 생각뿐이었어. 정당의 메커니즘 같은 건 생각도 못해봤지.”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 사회적 약자인 ‘을’을 위한 ‘을지로위원회’나 ‘더 좋은 미래’ 같은 진보적 모임들이 있긴 하지만, 그리 친노동적인 정당으로 보이진 않는데.

“이것에 대해선 내가 반성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노동현장엘 다니고 입법 발의도 열심히 한다고 했어. 하지만 정치의 본연은 현장에 가서 ‘여러분과 함께 있겠습니다’ 약속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제로 국회의원의 신분에 맞게, 정당인의 위치에 맞게 그걸 실현시키는 거거든. 그러려면 당의 정체성이 바뀌어야지. 기존의 정치문법이 안 맞으면 기존 정치를 바꾸고, 기존의 리더십이 틀렸으면 리더십을 다시 세워야 하고. 당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간절함이 없다고 하면 간절한 정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난 2년간 난 연습게임만 한 것 같아.”

-본게임은 뭐지?

“지금처럼 하면 괜찮겠거니 생각했다가 최근 6개월 정도 정말 생각을 많이 했어. 난 조직원이야. 정당이 그렇게 욕을 먹으면 정당을 고쳐야지. 그걸 고치지도 못하면서 ‘은수미는 괜찮은데 새정치(민주연합)가 문제다’라는 얘기를 듣는 것만큼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일은 없어. 정말로 당을 바꾸고 리더십을 교체하기 위해서, 칼을 뽑아야 할 때 뽑지 못했어. 링을 주변에 두고 관전평만 한 셈이지. 링에 올라 피 터지게 싸워서 승자가 되든 패자가 되든 해야 하는데.”

사노맹 실패했어도 돌파는 해봤잖아


-정당을 개혁한다면 뭣부터 해야 할까?

“첫째는 내년 3월 전당대회. 수면에 무거운 돌을 던지면 외연이 확대되잖아, 동심원이 커지면서. 지금까진 외연을 확대한다고 가벼운 돌만 던지거나 돌을 안 던진 거지. 난 그 무거운 돌이 노동과 복지라고 생각해. 깃발을 분명히 하는 리더십을 세워야지.”

-비례대표 초선이라 제약이 많을 텐데.

“나한테 ‘별 영양가 없는 초선의원’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어. 근데 초선이든 재선, 삼선이든 세비 똑같고 주어진 권력 똑같아. 국민들은 초, 재선 그런 거 가리지 않아요. 우리가 80년대를 생각해보면 귀의하고 헌신하고 길을 닦는 게 중요하잖아. 그때 우린 연습게임이 아니라 본게임을 한 거야. 길이 막혔으면 뚫어야 하는데, 길을 뚫는 사람은 손해를 보겠지. 그래도 누군가 그 희생을 감내하면 거기 동의하고 힘을 모을 인물들은 우리 당에 있다고 믿어.”

-성공할까?

“실패할 가능성이 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사노맹이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아무튼 돌파는 해본 거야. 그런데 국회의원이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돌파 시도조차 못했다? 거기서 오는 좌절감, 자책감은 더 못 견딜 거야. 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어.”

세 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동안 사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인터뷰어로서 은수미를 대하려 애썼다. 마지막 질문 하나는 인터뷰어가 아니라 30년 지기 친구로서 물었다.

-넌 평탄한 길을 놔두고 늘 힘든 길을 자초하는구나. 왜 조용히 풀 뜯어먹고 행복하지 못할까 아쉬운 적은 없었어?

“마음을 접었어.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애초부터 무슨 악마의 표지처럼 딱 찍혀 나온 운명 같은…(웃음) 난 그래도 행운의 별에서 온 사람이야.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으니. 평생 그렇게 살아야지 뭐.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보단, 해보고 실패하는 게 나아.”

지금 은수미는 남윤인순, 유은혜 의원과 국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단식농성을 함께 하고 있다. 가장 비정치적인 정치인, 우리가 바라는 정치란 애초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녹취 김연지(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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