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2-11-26 03:00:00 기사수정 2012-11-26 04:43:23

“청구권 시효만료 인정 못해”… 유족에 1억100만원 지급 판결
다른 피해자들 줄소송 예상


2008년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만료로 손해배상 청구가 기각됐던 ‘거창 양민학살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에게 국가 배상의 길이 열렸다.

부산고법 민사6부(신광렬 부장판사)는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 박모 씨(79·여)와 아들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에게 1억1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원심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이는 대법원이 2008년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만료를 이유로 다른 유족 300여 명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 원심을 확정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만약 대법원에서도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그동안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유족들의 소송 제기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거창사건은 6·25전쟁 당시인 1951년 2월 9일부터 사흘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무장공비 소탕에 나선 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이 14세 이하 어린이 385명을 포함한 양민 719명을 사살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거창사건은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륜적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이라며 “피고가 적극적으로 피해회복 조처를 하기는커녕 시효소멸 주장 등을 통해 책임을 부인하는 것은 국격에도 걸맞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6·25전쟁을 전후해 발생한 유사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인 ‘문경사건’과 ‘울산국민보도연맹사건’ 피해자들은 이미 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이어서 거창사건 유족에게만 다르게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의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만료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거창사건 피해자에 대한 배상액을 본인 2억 원, 배우자 1억 원, 부모와 자녀 5000만 원, 형제·자매 1000만 원으로 정했다. 이번 소송의 배상규모가 예상보다 적은 것은 원고 측이 배상액 중 일부만 청구했기 때문이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