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 2013.02.26 07:01


일본경찰의 머리에 총을 겨누던 그 이름..' '조선 의열단'

단재 신채호 순국 77주년 추모식, 이육사 딸 이옥비 여사 참석
정의롭게 기사입력 2013/02/22 [19:39]
항일독립투쟁의 꽃은 일본경찰과 친일앞잡이에게 총을 겨누던 스나이퍼들이었다. 마치 각시탈처럼 신출귀몰하며 조선백성의 눈에서 피눈물 짜내던 일본 순사와 친일앞잡이들에게 몰래 다가가 총을 겨누던 조선구국의 의로움과 열기로 뜨거운 그들.

그들이 바로 조선의열단이었다.
그들은 말과 평화로는 도저히 간악한 일본에게서 조선과 조선백성을 구할 수 없다고 뼈저리게 실감하고 실력을 행사해야한다는 단재 신채호의 주도로 탄생하였다. 그 안에는 '광야' '청포도'로 유명한 저항시인 이육사도 있었다.

▲ 일제에게 당한 조선민족의 피해 © 정의롭게


























일본은 평화의 정신으로 조선반도 온백성이 일어난 만세운동을 무시했다.
수만이 일어나도 그 수만명의 무기없는 착한 무지렁이 백성들은 총칼로 쑤셔대고 복종시키면 그만이었다. 말 안듣는 자는 잡아가두고 때리고 굶기고 심지어 생체실험마저 자행하였다.

펜을 휘둘러 그 악행을 만천하에 알려도 그들에게는 우스웠다. 검열하고 폐간시키고 협박하고 매수하고 변절시켰다. 결국 원래는 민족지였던 조선일보조차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의열단은 달랐다.
제아무리 독한 일본이라도 어둔밤 몰래 다가와 뒷머리에 총을 겨누고, 인파속에 숨어들어 차를 폭파시키는 죽음을 각오한 스나이퍼와 용사들에게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일본에게 의열단은 실제적인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제 해방을 맞고 2013년 2월 21일, 그 의열단들의 후손과 형제들이 단재 순국 77주년 기념식에 모여 의열단을 만든 단재 선생의 죽음과 그 뜻을 기렸다.

▲ 의열단 정일성의 딸, 이육사 시인의 딸 이옥비 여사, 가운데 김원웅 전 의원, 단재의 며느리 이덕남 여사, 의열단 윤세주의 여동생 © 정의롭게



























이 날, 단재의 며느리 이덕남 여사와 의열단 윤세주 의사 여동생, 정일성 의사의 딸, 이육사의 딸 이옥비, 상해임시정부 국무위원 차리석의 아들 차영조 등 역사계의 별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덕남 여사는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한국의 현실에 절망, 현재 중국에서 살고 있으며, 이육사 시인은 의열단의 멤버로 활동하다 일경에 붙들려 모진 고문으로 44년 40살의 나이로 감옥에서 순국하였는데 당시 그 딸 이옥비는 겨우 3살. 평생 만나지 못한 아버지를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로만 만나며 지금은 이육사 기념관을 지키고 있다.

특히 차리석의 아들 차영조의 사연은 우리나라가 해방이후에도 친일을 청산하지 못해 항일지사와 그 가족이 얼마나 수난을 당했는지 알 수 있는 예가 되었다.

해방이후, 집권한 이승만은 친일파를 오히려 중용하여 그들이 경찰과 군사, 행정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게 된다. 권력을 잡은 그들은 적대관계에 있던 항일지사들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6.25 등을 빌미로 그들을 탄압하고 심지어 산채로 홍제동 화장터에 던져넣는 등의 만행을 수도없이 저지른다.

하여 아들의 안전을 위해 그 어머니는 차영조의 성씨 車(차)를 고쳐 申(신)으로 바꿔 학교에 다니게 하였고, 이에 차영조는 국민학교 시절 내내 신영조로 살았다 한다.

▲ 헌화하는 항일독립운동가 2세들와 가족들 © 정의롭게


























일본이 싫어, 조선민중 죽이는 일제가 싫어 투쟁하고, 그놈들에 부역하는 자들은 절친이어도 용서할 수 없다며 죽을 지언정 그 돈은 안받는다며 친구의 보석금마저 냉정히 거절하고 감옥에서 순국한 단재 신채호 선생.

그러나 친일을 하고도 어느 한놈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육군본부 회장을 맡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 대한민국을 단재는 이해할 수 있을까?

중국에서 온 정일성 선생의 딸에게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고, 그래서 일본에 부역한 자들이 오히려 독립운동가를 죽이고 그 딸이 대통령을 하는 사회'를 설명하자 아예 그 상황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놀라운 시대..

(*중국은 문화대혁명 당시 일본에 협력한 자들을 인민재판 형식으로 처단했다. 실제로 일본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폭행당하고 살해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고. 영화 패왕별희를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단지 일본군 앞에서 공연한 것만으로 수치와 죄를 무릅써야 했다.)

▲ 인민에게 해가 되는 임금은 죽여도 좋다 말한 이는 단재이다 © 정의롭게


























인민에게 해가 되는 임금은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단재. 평화라는 허울로 구호만 외치는 방식으로는 해방될 수 없다고 말했던 단재.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한다면서 무기력과 입진보에만 빠져있는 이들에게 여전히 단재 신채호 선생은 매서운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