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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0 11:24:37 (*.96.151.82)
6498
  등록 :2015-11-19 19:04
출장 갔던 파리의 스산한 가을비가 떠오른다. 낯설지 않은 도시라 11·13 테러의 현실감이 더한 걸까. 그곳에서 만났던 행복한 얼굴들을 생각하면 더 슬퍼진다. 하지만 내게 훨씬 낯익고 소중한 도시는 서울. 파리를 유린한 테러라는 야만보다 서울의 스산한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또 다른 야만의 그림자에 가슴이 더 서늘해지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오래지 않은 과거에 저 테러보다도 더 끔찍한 일을 겪었다. ‘응답하라 1988’의 시대. 광주에서 파리 테러보다 더 많은 시민이 죽임을 당했다. 사진 속에서 웃는 파리의 희생자들처럼 그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미래를 꿈꾸고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사건의 진실을 나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알 수 없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5·18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언론도 입을 다물었다. 기껏 들었던 건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켜 군대가 진압했다는 풍문뿐이었다. 민주주의를 요구했을 뿐인 시민들을 학살한 자는 교과서에 정의사회 구현의 지도자로 묘사됐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독재란 그런 것이었다.

파리를 유린한 야만에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이 땅을 유린했던 또 다른 야만에 대해선 무감해진 듯하다. 그 둘은 너무나 닮아 있음에도. 테러가 보통 범죄와 다른 것은 정치적·종교적 목적을 위해 저질러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조직적이고, 죄의식조차 없기에 더 잔인하다. 독재 역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테러리스트들의 신조인 근본주의와도 닮았다. 자유를 질시하고 다른 생각을 억누르며 인류 문명의 성취를 부정한다. 한 가지, 독재가 테러보다 더 끔찍한 건 시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시민을 해친다는 점이다.

지금 서울에서는 그 독재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비친다. 인류 문명이 ‘아니다’라고 결론 낸 걸 ‘맞다’고 우기는 것부터 그렇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얘기다. 집권세력과 다른 생각은 침묵시키겠다는 발상이 근본주의적이다. 국민의 저항을 진압하는 방식도 독재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아니, 더 독하다. 과거 군사정권은 시위 진압으로 사람이 상하면 움츠리기라도 했다.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이 사경을 헤매는데, 집권세력은 “미국 경찰이 총을 쏴서 시민들이 죽어도 80~90%는 정당하다”고 뇌까린다. ‘폭도’라고 윽박지른다. 5·18을 기억한다면 차마 할 수 없는 짓들이다.(곁가지이지만, 시위의 불법성 시비에 대해 언급하자면 “민주주의 체제에서 표현의 자유는 불안상태를 유발하고 불만을 조성하고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시위대의 주장이 아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판결문에 쓴 말이다. 텍사스 대 존슨. 1989년)

박용현 논설위원
박용현 논설위원

파리 시민들은 평소처럼 카페 테라스에 앉아 담소함으로써 테러와 맞서고 있다. 테러분자들을 소탕하는 것 못지않게 그들이 바라는 바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다. 이것은 독재가 싫어하는 바이기도 하다. 독재는 거꾸로 테러를 빌미로 자유를 옥죄기도 한다. 그래서 테러와 독재는 또 닮은꼴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두 야만과 싸워야 한다. 테러를 증오하되 자유를 지키며 삶의 다양성을 높이고 사랑과 우애를 나누며 독재를 조롱하자. 어떤 이들은 이슬람국가(IS)를 없애도 또 다른 괴물이 나올 것이라고 절망한다. 독재의 유전자 또한 절망스럽게도 질기다. 그러나 인류는 본디 야만과 싸우며 문명을 세우고 지켜왔다. 때로 외부의 야만과 싸웠고 더 자주 내부의 야만과 싸웠다. 그게 우리가 인간의 고귀함을 얻은 방식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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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5 새책! 『대테러전쟁 주식회사』(솔로몬 휴즈 지음, 김정연·이도훈 옮김) ― 공포정치를 통한 기업의 돈벌이
도서출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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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무리 도서를 구입하시려면? 인터넷 서점> 알라딘 교보 YES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인터넷영풍문고 전국대형 서점>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북스리브로 서울지역 서점> 고려대구내서점 그날이오면 풀무질 더북소사이...  
964 [안내]한국전쟁유족회 2012년 정기총회
조동문
10887   2012-02-24
한국전쟁유족회 2012년도 정기총회 *일시 :2월27일(월)오후2시 *장소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대회의실(2층) *식전 행사 :장완익 변호사의 특별 강연 등 *본 행사 :격려사(이이화 선생님 외) 등 (교통편은 지하철 1,2호선을 타고...  
963 관용과 미덕을 겸비한 유족회원이 되였으면!
정명호
10884   2012-02-03
60년의 한을 풀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는 이시점에 찬물인지 먹물인지 분간을 해야되지 않나요! 100만 희생자의 유족은 아픈상처를 어루만저주고 함께고락을 같이 해야할 형제 자매입니다. 조그만 사소한 일에 억매이지 말고 산적해있...  
962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제 연다 / 새거제신문
[관리자]
10881   2012-10-10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제 연다 14일 연초 천곡사, 3회 위령제 개최 2012년 10월 08일 (월) 08:21:39 한국전쟁 전후 보도연맹원 등을 이유로 국가 권력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제가 14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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