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5-05-04 18:54


일본 아베 정권의 군사팽창주의가 날로 힘을 얻고 있다. 일본 자위대는 집단적 자위권을 명분으로 세계 어느 곳이든지 미군 후방지원 명목으로 갈 수 있게 되어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도 가능하게 되었다. 지난달 27일 뉴욕에서 미-일 국방·외교장관은 미-일 안전보장협의회를 열어 자위대의 미군 후방지원을 일본 주변에서 전세계로 확대하는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의 제2차 개정에 합의했다.


이번 개정에서 두 나라는 “미-일 동맹은 평화활동과 해상안보, 병참지원 등 일본 법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어느 곳에서나 국제안보에 더 크게 기여를 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지침은 교전권과 해외파병을 포기한 일본 평화헌법을 위반하고 보통국가로 가려는 아베 총리의 군사대국화 정책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제 일본은 직접 군사행동에는 단독으로 나설 수 없으나 미군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미군병참 후방지원 명분으로 군사행동에 가담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을 가능하게 한 이번 지침 개정은 식민지, 한국전, 분단이라는 질곡에서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는 한국민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군에 있는 한국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가능성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은 지침에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입하거나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군사활동을 할 경우 한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문구를 명시적으로 넣자고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못했다. 대신 제3국의 주권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국제법을 준수한다는 애매한 내용이 포함됐다. 외교소식통은 여기서 제3국은 한국을 지칭하는 것이라며 지침에는 특정 국가 제3국을 넣을 수가 없어 제3국이라고 표현했다고 전했다.


주지하다시피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미-일 안보조약에 근거한 군사협력 매뉴얼이다. 이 지침은 1978년 소련 침공에 대비해 일본의 요청으로 제정되었다. 1997년 북핵 위기 때 미국 요청으로 1차 개정을 했고, 이번에는 일본 아베 정권의 군사대국화 정책과 미국의 중국 견제라는 이해가 일치하면서 미-일 동맹의 글로벌동맹화를 목표로 18년 만에 2차 개정한 것이다.


이 지침은 분단국 한반도의 입장에서 두 가지 큰 문제점을 가진다. 첫째, 한반도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보유한 미군이 집단적 자위권을 명분으로 한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이유로 한국의 동의를 명문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 한반도 문제를 포함해 모든 군사적 활동을 조정하고 실행하기 위해 지침에 설치된 ‘미-일 동맹 조정 상설기구’는 미-일 상설 군사협의기구로서 한·미·일을 포함한 아시아 군사동맹 강화를 위한 것으로, 동북아 신냉전구조를 강화시킨다. 이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여건 조성이라는 민족적 이해와 결코 맞지 않는다.


이 지침은 교전권과 해외파병을 포기한 평화헌법 제9조에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서 평화헌법의 정상적인 개정이 어려운 일본 아베 정권이 지침 개정을 통해 사실상 평화헌법을 외곽에서 무력화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국제법상 외국 군대가 타국의 영토에 주둔할 때 해당국의 주권적 의사 동의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미군 병참지원 명분으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입할 때 한국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줄 것을 우리 정부가 미-일 지침에 명시해주도록 구걸하는 것 자체가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을 애매한 지침 조항과 미국의 호의에 맡길 것이 아니다. 이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우리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통해 우리의 주체적인 외교능력을 신장하고,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해 남북한의 신뢰를 쌓는 일이다.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