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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눈물 "야권연대 살렸다"... 숨막힌 '3박4일'
[막전막후] 이정희 대표의 총선 불출마... '비판'이 환호성으로
12.03.23 21:46 ㅣ최종 업데이트 12.03.23 21:47 장윤선 (sunnijang) / 남소연 (newmoon)

23일 서울 관악을 야권연대 경선 여론조사 조작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선 후보직에서 사퇴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눈물을 꾹 참고 있다.
ⓒ 남소연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끝내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희철 민주통합당 예비후보와의 야권단일화 경선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보좌관이 유권자들에게 돌린 연령대 조작 문자메시지 파문이 불거진 지 나흘 만이다.

19대 총선 후보등록 마감일인 23일 그는 광주 망월동 묘지 참배에 이어 오후 2시 공식적으로 후보등록을 할 예정이었다. 일각에선 이 공동대표 본인이 직접 후보등록에 나선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진보의 도덕성'을 이유로 나흘 내내 이 공동대표의 후보사퇴 여론이 높았지만, 그의 선택엔 아무런 변함이 없다는 것이 이날 오전까지의 상황이었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은 "우리의 입장엔 변화가 없다"는 말로 이 상황을 일축했다.

실제 통합진보당은 이날 오전 4시까지 대표단 회의를 열고, 야권연대의 복원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통합진보당의 핵심 관계자는 "이정희 대표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대표단의 잠정적 결론이었다"고 전했다. 이 회의는 정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새벽녘 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날 이 공동대표의 후보사퇴 문제에 대해 강경모드로 발언했던 유시민 공동대표는 이날 오전 CBS 라디오에 출연해서 "이정희 대표의 문제에 대해서 국민들의 비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당 안에서도 지금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의를 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정희 대표가 출마를 결심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유 공동대표는 또 "이정희 대표가 사퇴를 안 하는 이유는 '내가 꼭 국회의원이 되어야 되겠다'는 것보다는 사퇴하면 야권연대의 심리적 기초가 무너져 우리는 물론 민주당에도 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인 것"이라며 "여러 가지 의견을 전하고 있지만, (이정희 대표가) 어떻게 할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당사자라면 좀 다르게 할 것"이라는 말로, 현 사태의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성토하기도 했다. 유 공동대표는 "이번에는 민주통합당이 좀 봐주면 안 되겠느냐"는 읍소도 했다.

문재인과 이정희의 진솔한 대화 속 '제3후보론'도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2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서울 관악을 야권단일후보 경선 과정에서 발생한 여론조사 조작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선 후보직 사퇴를 발표한 뒤 회견장앞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 권우성

전날인 22일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정강정책방송연설 때문에 상경했다. 기왕 서울에 온 김에 문 고문이 직접 이 공동대표를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문 고문과 이 공동대표는 단둘이 만났다. 아무런 배석자 없이 진행된 양자회동에선 상당히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진솔한 얘기를 나눈 두 사람은 이번 총선의 중대성과 야권연대 승리에 대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상임고문이 이정희 공동대표에게 이른바 '제3후보론'을 제기하고, 후보사퇴를 설득했다는 설이 돌았지만, 문 고문 측에서는 관련된 내용을 일절 확인해주지 않았다. 다만, 문재인 고문 측의 핵심 관계자는 "어제(22일) 서울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올 계획이었는데 결국 탑승하지 못했다"며 "덕분에 부산 선거운동의 오전 일정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달리 부산민심은 초반이 매우 중요한데 서울에서 자꾸 일이 터지는 바람에 문 고문이 선거운동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한숨도 터졌다.

민주통합당의 핵심 관계자는 "문 고문이 이 대표를 만났는데 아무도 결과에 대해 말을 못한다는 것은 결국 중재안이 실패했다는 방증 아니겠냐"며 "이 대표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오후까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이 가운데, 민주통합당 내부에는 '서울 관악을 사태를 푸는 3가지 방법'이 흘러다녔다. 첫째 이정희 공동대표는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 그에 관하여 민주통합당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민주통합당이 개입하면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 둘째 서울 관악을 지역은 애당초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 지역으로 무공천 한 곳이기 때문에 그 원칙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이 원칙을 버리면 이번 총선의 야권연대는 정말 루비콘강을 건너게 된다.

셋째 이 공동대표가 사퇴로 가닥이 잡히면 안산 단원갑의 백혜련 후보도 사퇴해야 한다. 애당초 백 후보의 민주통합당 공천은 '당내 여론을 설득하기 위한 카드'였기 때문에 이 대표의 문제가 해결되면 동시타결 방법으로 사퇴로 가닥을 잡는다.

서울 관악을 사태를 풀 수 있는 3가지 열쇳말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23일 서울 관악을 야권연대 경선 여론조사 조작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선 후보직에서 사퇴한 뒤 굳은 표정으로 국회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이 같은 여론이 이정희 공동대표를 짓누른 탓일까. 통합진보당 쪽에서는 이 공동대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22일에 이어 23일에도 문 상임고문을 만나고 있다는 정보가 흘러다녔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동대표는 오전 내내 자택에 머물며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출입 기자들은 이날 내내 '오후 2시'를 주목했다. 이 공동대표가 후보등록을 하겠다고 밝힌 이 시각에 'FM대로' 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만일 이 공동대표가 후보등록을 하고, 이번 선거를 뛴다 한들 본선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까 회의하는 기자들의 시각도 적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초반에 잘 풀었다면, 이 공동대표는 그야말로 '거물급 정치인'으로 격상되지만, 여기서 무리수를 둔다면 '이정희의 정치생명'은 여기서 끝이라는 진단마저 나돌았다.

그런데 이날 오후 1시 59분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가 긴급 타전됐다. "이정희 대표 사퇴 기자회견 곧 정론관서 할 예정". 곧이어 오후 3시에는 이 공동대표가 직접 정론관에서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할 예정이라는 소식까지 알려졌다.

이 소식이 긴급 타전되자, 정론관엔 침묵이 흘렀다. 모두 '오후 3시'를 향한 시계걸음에 눈을 맞추고, 이 공동대표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 공동대표는 이날 오후 3시에 정확히 정론관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많은 분들이 긴 시간 애써 만들어온 통합과 연대의 길이 저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며 "야권단일후보들이 이길 수 있다면 기꺼이 어떤 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접 회견문을 읽기 전 미리 마이크를 손보던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내 입이 열리고,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첫 문장을 읽을 때, 그의 눈가가 흐려지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포착됐다. 가슴으로 울고 있다는 심정이 전달된 게다. 이 공동대표가 이 같은 내용의 회견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국회 정론관 복도에서는 우위영 대변인이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기자들은 우 대변인을 위로했다.

이 공동대표는 이날 회견문에서 "진보의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린 책임도 당연히 저의 것"이라며 "몸을 부수어서라도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공동대표는 "경선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저"라며 "(자신의 사퇴로) 야권단일후보에 대한 갈등이 모두 털어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이 공동대표는 "정권교체가 아니면 민주주의도 경제정의도 평화도 그 어느 것도 기대할 수 없기에, 야권단일후보를 당선시켜 주십시오"라며 "야권연대를 만들어냈다는 잠시의 영광보다 야권연대의 가치와 긍정성을 훼손한 잘못이 훨씬 큰 사람으로서, 부족함을 채우고 차이를 좁히며 갈등을 없애는데 헌신해 전국에서 야권단일후보를 당선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백혜련도 한명숙과 손잡고 기자회견...

지난해 11월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을 비판하며 사표를 제출하고 민주통합당에 입당해 19대 총선 경기 안산단원갑에 출마한 백혜련 후보(왼쪽)가 23일 오후 후보직 사퇴를 발표하기 위해 한명숙 대표와 손을 잡고 국회 당대표실에 들어오고 있다.
ⓒ 권우성

이정희 공동대표의 회견 직후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백혜련 안산 단원갑 예비후보의 손을 잡고 국회 당대표실에 나타났다. 백 후보의 사퇴를 위한 수순이었다. 백 후보는 이날 기자들에게 "오늘 저는 안산 단원갑 후보직을 내려놓는다"며 "비록 후보직을 내려놓지만,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려 한다, 야권단일화의 밀알이 돼 정권교체와 총선승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가 상상도 못하는 고통 속에서 큰 결단 해주신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며 "민주통합당의 백혜련 후보도 야권연대를 위해 자신의 희생과 결단을 내린 점 참으로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 대표는 "이정희 대표와 제가 야권연대를 이룬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드려 너무나 송구스럽다"며 "야권연대에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양당은 부단한 노력을 해왔고 지금까지 양당은 모두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한 대표는 "이제 야권연대가 완성됐다"며 "비 온 뒤에 땅이 단단해지듯,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더욱 굳게 손을 잡고 단결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우리가 함께 승리하는 길만 남았다"며 "우리 모두 함께 손잡고 국민 여러분께 승리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한명숙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서울 관악을 지역은 이정희 대표의 불출마 선언에 이어 새로운 후보가 교체되면, 새로운 후보를 야권단일후보로 민주통합당이 인정할 것"이라며 "당연히 관악을 지역은 민주당의 무공천"이라고 밝혔다.

경선에서 불복한 김희철 의원의 탈당 후 무소속 출마에 대해서는 "저희는 야권연대의 정신을 갖고 김 의원의 탈당을 만류했다"며 "그러나 각 후보는 탈당할 권리가 있고 그분이 탈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김 후보는 이미 탈당했기 때문에 민주통합당의 후보가 아니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양당 대표는 25일 오전 11시 국회 귀빈식당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4·11 총선승리'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야권연대 드라마의 극적 반전... 터닝 포인트 핵심은 '이정희 결단'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관악을 야권단일후보 경선 과정에서 발생한 여론조사 조작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선 후보직 사퇴를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이처럼 파국으로 치닫던 야권연대는 이정희 공동대표의 결단과 백혜련 후보의 사퇴로 일단락됐다. 벼랑 끝의 위기에서 터닝 포인트를 잡게 된 것이다. 여론은 만 하루사이 급반전했다. 이 공동대표의 용단을 촉구하며 '부도덕한 진보의 오명'을 운운하던 여론은 급랭했고, 이 공동대표의 결단을 환영하는 응원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트위터에는 이 공동대표의 용단이 결국 야권연대 전체를 살렸다는 평가가 줄줄이 사탕으로 매달렸다.

이 공동대표가 이번 사퇴를 계기로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됐고, 국민은 이번에 결단한 이 공동대표를 잊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계속 달렸다.

무엇보다 야권연대의 막전막후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당한 공을 들인 황창화 민주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야권연대는 안 깨졌다"며 "야권연대를 합의했지만 진행되다가 암초에 부딪혔고, 이걸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난하게 협의하고 의논했다"고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황 대변인은 "문재인 고문도 역할을 했고 한 대표도 여러 면에서 결단을 했지만 무엇보다 이정희 대표 스스로의 결단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며 "야권연대는 총선 전략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고, 또 그래야 정권심판 이슈파이팅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백혜련 후보를 설득하던 중에 이정희 대표의 사퇴 소식을 속보로 알게 됐다"며 "이미 서울 관악을에 대한 민주통합당의 무공천 의사와 안산 단원갑 문제에서 우리가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는 미리 그쪽(통합진보당)에 전달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황 대변인은 "4·11 총선까지 또 어떤 고비가 우리에게 남았는지 모르지만 현단계에서 이 문제를 주말까지 풀지 못하면 상황이 매우 어려워진다고 판단했다"며 "주말을 넘기지 않고 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돼 너무나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보다 그는 "야권연대의 반전 드라마는 이제 본격화된다"며 "민간인 사찰 문제와 이명박 정권의 심장부를 강타할 야권연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