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입력 2015.02.24 20:20 | 수정 2015.02.24 22:40


작년 십자가 메고 900㎞ 걸은


희생자 유족 이호진씨 부녀


'팽목항~광화문' 다시 고행길

24일 오후 2시30분 전남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앞길. 세월호 사고로 숨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2학년 8반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57)씨와 누나 이아름(26)씨가 길을 걷다 엎드렸다를 반복하며 한발 한발 힘겹게 나아갔다. 3보1배는 걷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손과 발, 허리를 모두 움직여야 하는 동작 탓에 천천히 움직여도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땀방울이 연방 대지 위로 떨어져도 가슴속에 맺힌 아픔은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이호진씨는 땀을 닦으며 "온몸으로 국민들께 30만번 절을 하려고 한다. 먼저 절을 받으시고, 잊혀져 가는 세월호와 희생자를 다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들 부녀는 지난 23일 진도 팽목항 부두에서 서울 광화문광장까지 520㎞를 3보1배로 가는 고행에 나섰다. 100여일 동안 하루 3000배씩 세월호 희생자와 국민들께 절을 바친다. 애초 세월호 참사 1주기(4월16일)에 맞춰 광화문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6월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한명은 앞에서 모형 세월호를 실은 노란 손수레를 끌고, 한명은 그 뒤를 따라 세걸음 걷고 한번 절하는 삼보일배를 하면서 하루 5㎞를 가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힘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참고 가도 첫날엔 3.6㎞, 둘째 날엔 4.2㎞를 가는 데 그쳤다.

이들 부녀는 지난해 7~8월에도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팽목항을 거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한 대전까지 길이 150㎝ 무게 6㎏짜리 십자가를 메고 900㎞를 걸었다. 하지만 반년 만에 다시 도로 위에 나서야 했다.

"세월호 사고 1주기가 다가오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잊혀져 가는 현실에 분통이 터졌다. 세월호를 인양하고 실종자 9명을 수습하라는 간절한 의지를 나타내고 싶었다. 세월호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으면 언제 누가 또다른 희생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이호진씨는 지난해 8월 도보행진을 마친 뒤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았다. 약자의 벗이 되라는 뜻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도 얻었다. 이번 고행에 나설 때도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교황의 말씀을 새겼다.

그는 "속죄하는 마음과 호소하는 마음으로 가겠다. '국민이 하늘이고, 민심이 천심'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국민들께서 더 큰 세월호 모형을 만들어 서울로 밀고 가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3보1배단에는 신부·목사·시인·시민 등 10여명이 동참했다. 진도 주민들도 식사나 숙소를 마련하는 등 살뜰하게 보살피고 있다.

진도/글·사진 안관옥 기자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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