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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2016-08-25 19:24수정 :2016-08-25 23:26

‘모두의 노래’ 국내 첫 완역 출간
중남미 자연과 역사, 투쟁 그려
유럽풍 예술지상주의 비판도

파블로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
모두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지음, 고혜선 옮김/문학과지성사·2만2000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서사시 <대지의 노래>가 처음으로 완역 출간되었다. 전체 15부 252편으로 이루어졌으며 번역판으로 본문만 70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 여기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자연과 역사, 신화와 유적, 식민 지배와 독립 투쟁, 독재 정권을 상대로 한 싸움, 그리고 네루다 자신의 삶과 정치 역정 및 문학적 다짐 등이 두루 담겼다.


“세월의 저 깊은 곳에 있는/ 하늘색 경기병,/ 이제 막 수를 놓은 아침의/ 깃발을 든 군인,/ 오늘의 군인, 공산주의자,/ 광산의 급류를/ 상속받은 투쟁가,/ 빙하에서 온 내 목소리,/ 단지 사랑의 의무로/ 모닥불로 매일매일 올라가는/ 내 목소리를 들으시오./ 우리는 같은 땅 사람들,/ 똑같이 박해받는 민족,/ 똑같은 투쟁이 우리 아메리카의/ 허리를 조이고 있습니다.”(4부 ‘해방자들’ 중 ‘그날이 올 것이다’ 부분)


그리스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네루다의 서사시 <모두의 노래>에 곡을 붙이고 가수 마리아 파란투리 등이 노래를 부른 앨범 <모두의 노래>.
그리스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네루다의 서사시 <모두의 노래>에 곡을 붙이고 가수 마리아 파란투리 등이 노래를 부른 앨범 <모두의 노래>.


‘모두의 노래’라는 제목에서 ‘모두’란 외세와 독재 권력의 박해에 시달리며 그를 상대로 투쟁을 펼치는 라틴아메리카 민중을 가리킨다. 이 작품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현실을 비판적·투쟁적 관점에서 그린다. 약관 스무살 나이에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 연애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그리고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각색한 영화 <일 포스티노>는 네루다에 관한 낭만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네루다는 외교관을 거쳐 상원의원 선거에 당선한 정치인이었으며 1945년에는 칠레 공산당에 입당했고 정부를 비판한 상원 연설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체포령까지 내려져 도피 생활을 했을 정도로 현실에 적극 개입한 실천적 문인이었다. <모두의 노래>는 바로 이 도피기에 집중적으로 집필해 1950년 멕시코에서 처음 출간한 작품이다.


파블로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


“지옥의 자궁처럼/ 갱도의 좁은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 얼굴 없는 한 피조물,/ 땀, 피,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가면이 등장했다.// 그 가면이 내게 말했다. ‘어디를 가든지/ 이 고통에 대해 말하세요./ 형님, 저 아래 지옥에서/ 사는 동생 이야기를 좀 해줘요.’”(5부 ‘배신의 모래’ 중 ‘죽음’ 부분)


1936년 마드리드 주재 영사로 있으면서 목격한 스페인 내전과 파시즘의 광기에 이어 칠레 북부 초석 광산에서 맞닥뜨린 민중의 고통은 네루다를 견결한 현실주의자이자 민중주의자로 탈바꿈시켰다. 그를 상원의원으로 뽑아준 유권자이기도 한 광산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아픔과 투쟁에 동참하겠다는 각오는 <모두의 노래> 도처에서 보인다. ‘유서’가 포함된, <모두의 노래> 마지막 15부 ‘나는’ 중 ‘위대한 기쁨’ 장의 이런 선언은 네루다의 문학관을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민중을 위해 글을 쓴다. 비록 그들이/ 투박한 눈으로 내 시를 읽지 못한다 해도.// 단 한 줄이, 내 인생을 뒤흔든 대기가/ 그들의 귀에 닿을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면 농부는 눈을 들 것이고/ 광부는 돌을 부수면서 미소 지을 것이고,/ 공장 직공은 이마를 훔칠 것이고,/ 어부는 파닥대면서 그의 손을 태울/ 물고기의 반짝임을 더 잘 볼 것이고,/ 갓 씻어 깨끗해진 정비공은 비누 향기 풍기면서/ 나의 시를 볼 것이고./ 어쩌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는 동지였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왕관이다.”


상대적으로 현실 문제와 민중의 고통에 무심한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가차 없는 단죄가 이런 문학관과 짝을 이룬다.

네루다의 육필원고.
네루다의 육필원고.


“그대들 지드파,/ 지성인들, 릴케파,/ 신비주의자들,/ 실존주의의 가짜 마법사들,/ 무덤 하나에서 피어오른/ 초현실주의적 양귀비,/ 유행 추종자 유럽풍 시체들,/ 자본주의자 치즈의/ 창백한 구더기들,/ 그대들은 무엇을 했는가?/ 이 어두운 인간 군상 앞에서,/ 이 발길질 당한 존재 앞에서/ 똥 속에 고개를 박은/ 이 머리 앞에서, 짓밟힌/ 거친 인생의 본질 앞에서.”(5부 ‘배신의 모래’ 중 ‘천상의 시인들’ 부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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