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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06-18 18:43


그레그 전 대사가 강조하듯 북한을 계속 ‘악마화’만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 아닌가. 악화일로의 남북관계에 가슴이 답답하다. 그럴 때 상상력의 나래를 펴야 한다. 비록 엉뚱할지라도 나의 친구 김낙중형은 그래서 소중하다.
친구인 김낙중군의 이야기를 꼭 남겨두고 싶다.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중심으로 한 신진회와 서울법대에 있던 신조회, 그리고 고려대 경제학과의 협진회란 세 동아리의 졸업생들은 4·19 후 통합하여 신조회란 모임을 가졌다. 빈약하지만 <신조>라는 동인지도 몇 번 발행하였다. 페이비언 사회주의 운운했다.

그때 동인지의 간행을 책임진 친구가 김낙중군이고, 그는 자연스럽게 권두칼럼도 맡았다. 그 무렵 미국의 맨스필드 상원의원이 한반도의 오스트리아식 중립화 통일론을 말하기도 하였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는 ‘한반도의 핀란드화?’라는 칼럼이 나오기도 하여 나는 동인지에 중립화 통일론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수사당국이 계속 감시를 했던 모양이다. 5·16이 난 뒤 회원들이 조사를 받았는데, 중립화론은 남북협상론에 비하여 가볍게 다루어진 것만 같다. 중립화론은 남북협상론에 비하여 운동의 역할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덜 위험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김낙중군의 권두칼럼을 과격하다고 문제 삼았다. 수사관의 말을 들으니 그럴싸하기도 하였다. 오랜 후 김형을 만나 그 이야기를 하니 무엇이 과격하냐고 역정을 낸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과격하지 않은 것도 같다.

사귀고 난 다음 한참 뒤에야 나는 김형의 위험한 모험에 관하여 자세히 알게 되었다.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에 다니던 그는 북한을 다녀와 고생을 하고 고려대 경제학과로 옮긴 것이다.

한번 사상관계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편리하게 사건의 등장인물화하여 처벌을 거듭거듭 받게 된다. 나는 그런 것을 ‘악운의 톱니바퀴’라고 이름지어 보았다. 일단 거기에 말려들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김형은 놀랍게도 사형 구형만 5번 받았다고 말한다.(1심, 2심 합산인 듯하다.) 그중 한번 그가 형무소에 있을 때다. 초등학교 선생으로 있던 부인이 찾아와서 억울하니 중앙정보부에 석방운동을 해달란다. 그러면서 부부가 함께 저술한 <굽이치는 임진강> 책 원고를 제출해달라고 준다. 마침 통일운동가로 알려진 박진목씨가 중정에 줄이 닿아 있길래 부탁했는데 아무 성과 없이 원고만 날렸다. 당시는 복사기술이 보급되기 전 같은데 다행히 복사본이 있었던 모양이다.

<굽이치는 임진강>은 평양에 갔다 온 일을 설명하는 책이다. 김형의 고향은 파주, 임진강 건너에 북한땅이 빤히 보인다. 공기매트리스를 타고 헤엄을 쳐서 북으로 건너갔다. 좌우의 사상에 물들지 않은 양쪽 청년들의 공동체를 우선 만들어 그것을 기반으로 점차 확대하여, 통일을 도모해보자는 ‘통일독립청년 공동체안’을 갖고 갔다. 참 순진하기만 한 생각이다. 그는 그 안을 남한 정부에도 제출한 바 있단다. 물론 묵살당했다.

평양에 압송된 그는 방학세 내무상을 만난 모양이다. 그가 억류되었던 옆방에는 박헌영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는 등 1년 가까이 시일이 지난 뒤 되돌려졌다. 철도를 따라 내려오다가 미군에게 잡혔다. 간첩죄로 기소되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심 1년 징역형, 2심 집행유예, 4·19 후 대법원에서 면소 판결.

그리고 학생 데모 사태가 있을 때마다 그는 체포되어 학생 겁주기에 활용된 모양이다. 가장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것은 그가 이우재씨와 함께 민중당 공동대표로 있을 때 북이 보냈다는 200만달러를 받은 사건. 그는 자기가 북에서 자술했던 내용을 ‘간첩’이 그대로 말하기에 진짜로 믿었다고 말한다. 그 사건만은 날조가 아니고 진짜란다. 나는 직감으로 반신반의다. 남쪽에서 여러 번 샅샅이 조사를 받았기에 가령 가짜 간첩이라도 그럴듯하게 언변을 구사할 수 있다. 200만달러는 거금이다. 김형이 무슨 이용가치가 있다고 그 큰돈을 보냈겠는가. 김형은 북이 자기의 통일운동을 높이 평가하여 그만한 거금을 보냈을 것이라고 자기만족을 하는 가운데 진실인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추리한다. 그는 그 돈의 약간을 남대문시장에서 환전하여 몇몇 당 동지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장독대에 묻어두었다가 체포된다. 달러는 별로 쓰지도 못했다.

김형은 연세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하는 통일운동모임인 ‘민족통일촉진회’에 가담하여 정책책임자로 열심히 일했다. 한때는 박진목씨가 그 모임을 주도하다시피도 하였다. 나도 거기서 내는 <민족통일>에 여러 번 기고했다. 그리고 그는 거의 모든 통일논의 모임에 참석하여 그의 파열음 나는 말투로 열변을 토한다.

얼마 전 그를 만나려고 하니 그는 공기가 나쁜 서울에는 가기 싫다고 그가 사는 일산으로 굳이 오란다. 1931년생으로 나보다 나이가 위임을 알았다. 일산에 가니 커피도 아주 조금만 마시고 도서관에 간다고 지팡이를 짚고 가버린다.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일산 지역의 지역활동모임에도 열심인 것 같다. 한번 우연히 그런 모임에서 만난 적도 있다.

그는 고려대 대학원을 나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어가며 김윤환 교수와 공저로 <한국노동운동사>(일조각, 1970)를 내는 등 학술적 서적도 몇 권 냈다.

그는 ‘8·15 70주년을 맞으며’란 부제가 붙은 “우리 민족 탐구와 통일의 길”이란 짧은 논문을 나에게 건넸다.

임진강을 헤엄쳐 건너 평양까지 가서 통일을 호소한 열혈청년, 그 줄기찬 통일운동으로 평생에 다섯 번이나 사형 구형을 받은 수난의 인물 - 사람들은 그를 돈키호테라고 비웃기도 할 것이다. 돈키호테가 기사도에 헌신했다면 김낙중형은 여하간 한민족의 통일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그의 통일방안의 기본틀은 ①남북한 교류협력 ②국가연합 ③연방국가 ④단일국가의 순으로 많은 다른 논객들의 순서와 같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도 ‘공동상속제’ 도입을 주장한다.

“공동상속제란 돈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는 일정액 이상의 소유재산, 예를 들면 100억원, 또는 1000억원 이상의 재산은 공동상속해서 국가의 ‘공동상속기금’에 귀속, 적립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공동상속기금’에 귀속된 재산을 매년 18세 또는 20세가 되는 청년들에게 일정액을 자본분배해서 모든 젊은이들이 공평하게 인생을 출발할 수 있는 밑천으로 삼을 수 있게 해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겨레’에 대한 따듯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공동상속기금에서 자본분배를 받는 젊은이들은 그것을 은행에 저축해둘 수도 있고, 증권이나 주식을 살 수도 있고, 상급학교 진학자금으로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이렇게 되면 모든 젊은이들이 같은 인생출발선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기본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주장이라고 반론이 빗발칠 것이다. ‘혁명적’인 주장임에는 틀림없으나 돈키호테적이라 하기에는 저어된다. 해방 후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농지개혁도 하지 않았는가. 그는 짐짓 극약처방을 낸 것이라고 본다.

‘북측 국가 내부통일의 길’이란 항목은 다음과 같이 의외로 간단하다.

“북측 사회 내부가 통일되는 길은 우선 주변 강대국들이 군사·경제적 압력을 풀고 같은 이웃국가로 대접하여 교류협력하는 길입니다. 그래야 일당독재체제가 필요없게 되고, 민주적 당운영과 입당절차의 민주화가 가능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북’ ‘용공’ 운운 같은 즉각적 반응은 일단 보류하고 보자. 그는 요점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려고 누구나 하는 북체제 비판을 생략하였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추동력과 창의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상원의원은 “이 나라는 노동하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최상층의 사람들을 위해 작동할 뿐이다. 그것은 미국의 꿈이 아니라 미국의 악몽이다”라고 비판하고 있지 않는가.

남재희 언론인
남재희 언론인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거듭 강조하고 있다시피 북한을 계속 ‘악마화’만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궁서막추(窮鼠莫追·피할 곳 없는 쥐를 쫓지 말라).

지금은 상상력 결핍의 시대인 듯하다. 청년 실업에, 비정규직에, 세계에서 높은 자살률에, 그리고 악화일로의 남북관계에 가슴이 답답하다. 그럴 때 상상력의 나래를 펴야 한다. 비록 엉뚱할지라도 나의 친구 김낙중형은 그래서 소중하다. 내가 산초 판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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