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등록 : 2012.08.14 19:20수정 : 2012.08.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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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전후 미국·소련 분할 점령이라는 외적 요소에 의해 한반도의 분단이 이루어졌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렇다고 한반도 내적 요소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독립운동 시기에 형성된 두 진영의 갈등은 분단의 내적 요소였다. 찬탁, 반탁 진영의 대립과 갈등은 미-소 공동위원회에 영향을 미쳤고, 미-소 공동위원회의 갈등은 다시 남북 두 진영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한반도 분단은 이 외적 요소와 내적 요소가 상호 작용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외적 요소가 한반도에 상륙한 것은 근대사에 들어섰을 때다. 한반도는 열강들의 각축 속에 생존전략과 발전전략을 모색하였다. 갑신정변, 동학운동, 중립론, 조선책략, 갑오개혁, 독립협회 모두가 그 몸부림이었다. 그 와중에 ‘제1적대국’과 ‘제1협력국’이라는 ‘이이제이’(以夷制夷) 형세가 이루어졌지만, 결국은 내적 요소가 외적 요소에 의해 무참히 문드러졌다. “약소국에 외교가 없다”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고 하지만 외적 요소는 궁극적으로 내적 요소를 통해 작용한다. 구한말의 역사는 바로 내외 요소의 합력이 만들어낸 비극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근대사 이후 한세기 넘게 한반도를 괴롭혔던 이 지정학적 숙명론은 오늘도 한반도를 맴돌고 있다. 외적 요소는 여전히 변함없이 한반도에 군림하여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 역시 이 외적 요소가 내적 요소와 얽히고설켜 복잡한 양상을 띤다. 구한말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당대 강대국들이 외적 요소를 이루고 있다. 달라진 점이라면 내적 요소가 분단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것이다. 한반도 분단이라는 내적 요소는 어찌 보면 늘 외적 요소로부터 에너지를 보충받으며 갈등을 증폭시키는 모양새를 보이기도 했다.

한반도 분단은 제로섬 게임으로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한반도를 좌우한 외적 요소는 어느 한쪽이 이기는 제로섬 게임보다 한반도가 냉전의 최전선으로,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는 것을 더 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제로섬 게임의 열전인 한국전쟁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정전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오늘날에도 한반도의 긴장과 완화가 반복되는 것 역시 외적 요소 쪽에는 한반도가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는 것이 필요해서일지 모른다. 한반도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면, 한반도라는 전략기점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한-미 동맹, 나아가 미-일 동맹이 존재할 근거가 사라질 수 있다.

결국 이 외적 요소가 한반도 문제를 한반도의 의지대로 해결해줄 것이라 바라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한반도 문제를 국제화·정치화할수록 강대국들은 한반도 분쟁의 틈에서 더욱더 자신들의 전략을 펼칠 수 있다. 한반도 문제 역시 더욱 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 외적 요소가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을 탐탁스럽지 않게 여기는 것도 결국 그들의 전략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남북관계가 진전을 보인 시점에 제1차, 제2차 북핵위기가 터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한반도는 내적 요소가 조성한 평화와 안정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가장 민감한 군사분계선 지역인 금강산과 개성공단에서였다. 분계선을 뚫고 열차도 달렸다. 수천, 수만명의 한국인들이 북한 땅을 찾은 경험도 있다. 한반도의 운명은 결국 이 내적 요소에 의해 좌우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의 출범과 함께 북한식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남북관계에 역사적인 기회가 다시 한번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 그 기회를 잡는 몫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 윈-윈의 남북한 내적 요소에 있을 것이다.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