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31 20:04


광복 70년의 새해 첫날이다. 일제 식민지배에서 해방되던 그날, 3000만 겨레는 모두 하나 되어 고루 잘사는 행복한 나라를 꿈꾸었을 것이다. 70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남북 대치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남쪽은 또 이념 대립으로 갈리고, 민주주의는 유신시대로 퇴행하고, 계층간 격차는 더욱 커지는 등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올해는 70년간 지속해온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화해와 통합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가장 먼저 해소해야 할 적폐는 남북 갈등이다. 남북 갈등은 남한 내 이념 대결을 불러일으켜 우리나라의 정치뿐 아니라 경제, 국방, 문화 등 사회 전반을 왜곡하고 옥죄는 핵심 변수다. 남북 갈등과 대치 국면을 대화와 평화 국면으로 전환하지 않고선 국가 안보도, 민주주의 진전도, 경제 민주화도 제대로 이뤄내기 어렵다. 물론 통일도 기대할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에 소극적이었다. 보수세력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두 정권은 오히려 남북 갈등을 조장하며 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곤 했다. 18대 대선에서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일으켜 선거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었고,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면서 적대적인 북한을 최대한 인용했다. 최근 종북공안몰이도 남북 갈등과 이념 대결을 자양분 삼아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의 불씨를 본다. 지난 연말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당국간 회담을 제의했다. 이번만은 일회성 제안에 그치지 말고 진정성 있는 대화와 교류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우선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금강산관광 재개와 5·24 조치 완화·해제 등에서 시작해 남북간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 그런 뒤 진전된 경협, 정치, 핵 문제 등으로 확대하면서 본격적인 남북 화해 국면을 만드는 게 순서다. 주변 강대국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인내심, 그리고 포용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복원도 시급한 과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는 유신시대로 퇴행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참혹한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이 버젓이 선거에 개입하고, 선출직 국회의원이 임명직 재판관들에 의해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70년대에 유행하던 반정부 유인물이 도심 곳곳에 뿌려지는 현실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느 만큼 후퇴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가진자나 혹은 못가진자의 전유물도 아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자신의 생각과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펼쳐보이고, 그런 다양한 의견이 여러 제도적 장치를 통해 국정에 반영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제도다. 이런 민주적 가치들이 계속 훼손된다면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민주주의 훼손 세력에 끝까지 저항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사회 전 부문에 걸쳐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는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특히 비정규직 양산으로 인한 노동계층의 빈곤화는 소득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우리 경제의 발목까지 잡고 있다. 기업과 극소수 부유층에 부가 과도하게 편중되면 민간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들은 매출 부진으로 도산 위기에 처하는 등 악순환에 빠진다. 이런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주도형 성장으로 경제정책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 기업 소득을 가계 소득으로 대폭 이전해 개인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장그래법’을 추진하는 등 거꾸로 가고 있다. 이래 가지고는 경제 활성화는커녕 계층간 격차와 사회적 갈등만 더욱 확대될 뿐이다. 궁극적인 해법은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를 정당한 대화상대로 인정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는 것이다. 비록 힘들더라도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조가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에 나서는 길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철저히 중립을 지키면서 노사 양쪽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조정하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화해와 통합을 이루려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층이 먼저 자신의 일부라도 내려놓는 게 순리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박근혜 정부와 수구·냉전세력한테 이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분단 모순을 극복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중심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가 절실하다. 퇴행하고 있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앞으로 돌릴 만한 시민사회의 역량이 축적됐을 때 비로소 기득권층과의 화해와 통합도 가능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갈등지수는 계속 높아지고, 저항의 강도도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러다가 극한 상황에 이르면 폭발한다. 그런 상황이 반복된 게 광복 70년의 역사 아니던가. 이제 7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생명 에너지를 갉아먹은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마감하고 화해와 통합의 실마리를 찾아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