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08 22:04

그림 박재동 화백

잊지 않겠습니다

글 잘 썼던 제훈에게

사랑하는 제훈이에게.

오늘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269일째 되는 날이야. 이곳은 이렇게 추운데 거긴 어때? 너는 좋은 곳에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는 한편으로 네 걱정이 되는구나. 내 사랑하는 아들, 제훈아. 불러도 불러도 채워지지 않는 그 이름. 너에 대한 그리움이 엄마 주위를 맴돈다. 그때 우리 제훈이가 얼마나 애절하게 엄마를 불렀을까. 제훈이가 하루아침에 증발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이젠 엄마와 같이 아침을 맞이할 수 없고 네 식구가 둘러앉아 식사도 같이 못하는구나. 너와 비슷한 체격의 다른 학생이 지나갈 때면 그 뒷모습을 보면서 너를 떠올리고 눈물을 흘려야만 하다니 이런 상황이 어찌? 일어났는지? 엄만 지금도 믿어지질 않는다. 엄마의 기쁨이고 자랑이었던 네가 한순간에 이렇게 사라지다니, 그리고 그런 널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다니 엄마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엄마는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들을 곱씹고 또 곱씹어 생각했단다. 그렇게 괴롭고 애통할 수가 없었단다. 엄마는 억울함에 네가 이 세상을 왜 떠나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만 했기에 국회며 광화문에 다녔어. 그렇게 힘들게 엄마를 불렀을 텐데도 아무런 대답을 해줄 수 없어서 엄마가 미안해.

요즘은 엄마와 아빠 마음에 희망이 깃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네가 떠난 슬픔과 상실감, 그리움의 떨치기 힘든 그 자리에 새로운 빛이 들어와 생명의 소중함을 모든 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어. 우리가 많은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서 받았듯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 이런 생각도 네가 우리를 떠나고 난 후 생겼구나. 너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잘 살아갈게. 사랑해 제훈아.


김제훈군은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야?”


어느날 엄마는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제훈이는 일부러 대답을 피했다.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일까 더 궁금해진 엄마는 “그래도 제일 친한 친구가 있을 거 아니냐”며 다시 물었다. 그러자 제훈이는 “친구는 순위를 정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8반 반장이면서 단원고 봉사동아리 ‘탑(TOP)’에서 활동했던 김제훈(17)군은 친구들을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가족들에게도 늘 다정다감했다. 지난겨울 제훈이는 탤런트 이민호 팬인 엄마에게 깜짝 생일 선물을 했다. 이민호의 그림을 그려 엄마에게 선물로 줬다. 이전에는 이민호의 사진과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에 나온 노래를 엄마의 휴대전화에 넣어주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인 남동생은 “나는 엄마, 아빠보다 착한 형아가 제일 좋다”고 말하곤 했다.


제훈이는 늘 팝송을 흥얼거리며 다니는 등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았다. 글재주도 뛰어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글짓기 대회와 과학경진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다. 4월23일 가족에게 돌아온 제훈이는 지금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