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ressEngine ver.2

글 수 1,141

등록 :2015-05-18 21:45수정 :2015-05-18 21:53 

잊지 않겠습니다
늦둥이 동생의 ‘보호자’였던 근형에게


세상 어디에도 없을 나의 특별한 아들 근형이에게.


지금도 현관문을 열고 장난스런 표정으로 뛰어들어 올 것만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사고로 널 잃은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수학여행 가는데 왜 위험하게 배를 타고 가. 돈을 좀 더 내더라도 비행기를 타고 가지”하며 걱정스럽게 말을 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그래도 살아있을 거라고 살아만 있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달려간 그곳에 너는 없었고 바다는 너무나 조용했어. 23일간 진도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었단다. “너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하면서 말이야.


기다림에 점점 불안해하고 지쳐갈 때쯤 우리에게 돌아온 너는 역시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였어. 어버이날 밤 11시 5분에 엄마, 아빠 품에 돌아와 줬으니 말이야.


착하디 착한 내 아들. 기울어진 배 안에서 통화할 때 꼭 살아서 갈 테니 걱정 말라던 속 깊고 듬직했던 아들. 틈만 나면 사랑한다며 꼭 안아주곤 했던 다정한 아들. 자상하고 배려심 많던 멋진 아들. 언제나 엄마와 동생이 자신보다 먼저였던 든든한 우리의 보호자. 세상 어디에도 너 같은 아들은 없을 거야. 이 세상 누구도 널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생각할수록 아깝고 억울하고 분해서 편히 잠을 잘 수가 없단다. 자다가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울컥울컥 눈물이 쏟아지곤 해. 악몽을 꾸고 있는 거였으면 좋겠구나.


학교에서도 유명했던 ‘동생바보’ 근형아. 그렇게도 예뻐했던 네 동생이 이제 여섯 살이 되었어. 똥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시켜주고 맘마 먹여주고 안아주고 업어주고 뒹굴며 놀아주고. 그렇게 유난스럽게 예뻐하며 키우다시피 했던 막내도 형아를 정말 많이 그리워하고 있어. 형아가 아직도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는 막내가 형아 보고 싶다고 찾을 때마다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구나. 그 누구도 형아를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걸 막내도 알고 있는 것 같아.


과학선생님이 되겠다고 학원도 안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을 텐데도 동생 봐주느라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도 못했는데. 천국에선 친구들과 실컷 어울려 놀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렴.


마지막 순간에도 어쩌면 너 없이 자랄 동생걱정을 했을 것 같은 동생바보 근형아. 정말 사무치도록 그립구나. 보고 싶고 만지고도 싶은데. 어디로 가야 널 한번만이라도 안아 볼 수 있을까.


내 아들로 살아줘서 고마웠고, 더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사랑한다. 내 소중하고 특별한 아들아.



이근형군은


‘사랑합돠.’(사랑합니다)


지난해 4월16일 오전 9시30분, 단원고 2학년 7반 이근형군은 엄마에게 이렇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상하게 생각한 엄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근형이는 “배가 충돌한 것 같다. 배가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9시42분, 근형이는 ‘살아서 갈 거예요. 기다려요’라는 마지막 문자를 엄마에게 남겼다. 그러나 근형이는 그날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했다.


근형이에게는 두살 많은 형과 6살 남동생이 있었다. 근형이는 늦둥이인 동생을 그렇게도 아꼈다고 한다. 엄마, 아빠에게는 애교 많고 싹싹한 딸 같은 둘째 아들이었다. 맞교대로 24시간 일한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아빠를 깔아뭉개며 장난을 치기 좋아했다.


근형이는 지난해 5월8일 엄마, 아빠에게 돌아왔다. 근형이의 지갑에는 3만원이 들어 있었다. 한달 용돈이 5만원인 아빠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들에게 쥐여준 돈이었다. 아빠는 이 돈을 보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 그림 박재동 화백
번호
제목
글쓴이
961 미래의 시간 앗아간 대한민국은 손 놓고 있었구나…억울함 꼭 밝혀줄게
[관리자]
2014-11-17 4696
960 '도보 행진' 단원고 학생들, 국회 도착
[관리자]
2014-07-16 4698
959 배우흉내 잘내고 친구 화해시키고…가족생일마다 건넨 손편지 그리워
[관리자]
2014-08-14 4699
958 엄마 생일때 만들어준 함박스테이크 맛있었어…18년간 너무 행복했다
[관리자]
2014-12-05 4702
957 4.3 희생자 추념식
[관리자]
2015-04-03 4706
956 세월호 특조위, 광화문 농성 돌입…“대통령의 결단 기다리겠다”
[관리자]
2015-04-29 4712
955 [책] 재판에서 드러난 세월호 사건의 진실
[관리자]
2015-03-20 4713
954 아, 대한민국! ③
[관리자]
2014-05-02 4717
953 엄마 야근때 꼭 전화하던 속깊은 딸 오늘도 널 만나려 네 방에서 잠이 든다
[관리자]
2014-08-06 4717
952 늘 고민 함께 나눴던 네 사진에 말을 걸지만…답 없는 현실이 슬프다
[관리자]
2014-12-03 4717
951 상실과 그리움의 자리에 새로운 빛이 들어와 생명의 소중함 깨닫기를
[관리자]
2015-01-09 4718
950 세월호 유가족, 해외서 세월호 참사 알린다
[관리자]
2015-02-25 4718
949 아이들 구조 못한 이유가 선장 등 개인 탓 뿐인가?
[관리자]
2015-04-13 4719
948 교황에 세례받은 세월호 아빠 520km '3보 1배'
[관리자]
2015-02-25 4722
947 정읍시, 제4회 동학농민혁명 대상 ‘故표영삼’ 선생 선정 / 아시아 경제
[관리자]
2014-04-15 4723
946 배 안에서 무서웠을 너, 손 잡아주지 못해 미안해 도언이랑 엄마의 커플링, 이젠 혼자 끼고 있어 미안해
[관리자]
2014-09-22 4723
945 세월호 참사 1년.."정부, 진정성 있는 사과해야"
[관리자]
2015-03-20 4723
944 세월호영웅 김동수씨 "자꾸 생각나는데 잊으라고만"(종합)
[관리자]
2015-03-20 4729
943 새 책! 『예술과 공통장 : 창조도시 전략 대 커먼즈로서의 예술』 권범철 지음
도서출판 갈무리
2024-02-12 4730
942 제주 4·3 완전한 해결 다짐
[관리자]
2014-06-05 4733

자유게시판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