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5-04-05 21:37수정 :2015-04-06 09:54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세월호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이 안산으로 돌아가는 버스 쪽으로 걸어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아이들 영정 안고
안산~광화문 도보행진
시행령안 폐기·인양 거듭 호소
“정부·정치인 우릴 좀 쉬게 해달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5일 오후 5시께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있던 시민들을 향해 고 최윤민양의 언니 최윤아(25)씨가 연신 고마움을 나타냈다. 최씨는 다른 세월호 유가족 220여명과 함께 전날 경기 안산을 출발해 광화문광장까지 이틀간의 도보행진을 마쳤다. 40㎞ 가까운 거리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함께하는 시민들이 불어났다. 광화문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2000여명(주최 쪽 추산)에 이르는 시민들이 모였다.

기독교 최대 축일인 부활절을 맞아 광화문광장에서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예배’를 진행하던 시민 수백명이 행진을 마친 유가족과 시민들을 맞았다. 이들은 오후 5시30분부터 촛불문화제를 열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정부에 호소했다.

유가족들은 전날 안산에서 출발하기에 앞서 1년 만에 상복을 다시 차려입었다.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 있던 아이들의 영정도 꺼내 들었다. 영정에 비닐을 씌운 채 빗길을 걸었다. 아버지 10명과 어머니 7명은 삭발을 했다. 앞서 2일에는 52명이 광화문광장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머리를 밀었다. 삭발을 한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는 “도대체 정치를 왜 하는 거냐. 아프고 슬픈 국민이 없게 하려고 정치를 하는 게 아니냐. 그런데 우리는 4월16일의 아픔과 고통을 1년씩이나 겪고 있다. 정부와 정치인들이 우리를 이제는 그만 좀 쉬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형제자매 74명
“부모 걱정할까 묵묵히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희생자 영정사진을 목에 건 채로 ‘세월호 온전한 인양 결정 촉구 국민도보행진’에 참가한 세월호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도착해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경기 광명종합장애인복지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유가족과 시민들은 오전 10시 다시 걸음을 떼기에 앞서 ‘희생자들의 형제자매’ 기자회견을 열었다. 1년 전 형과 누나, 언니와 동생을 먼저 보낸 74명은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고 남지현양의 언니 남서현(23)씨는 “그동안 우리 형제자매들은 부모님께 걱정을 끼칠 것 같아 묵묵히 있었지만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지금 이런 식이라면 이 나라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슴 아파만 하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했다.

형제와 자매 8명은 광화문광장에서 이석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위) 위원장을 만나 “부모님 세대에서 안전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세대에서 끝까지 해낼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이 모법인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하는 1박2일 ‘세월호 온전한 인양 결정 촉구 국민도보행진’에 나선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이 5일 오전 서울 구로구 신도림지하차도 인근을 지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편 지난 3일 정부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일부 손질하는 방안을 특위에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위 관계자는 “정부 쪽 인사가 논란이 되는 기획총괄담당관의 업무 범위를 ‘종합 조정’에서 ‘협의 조정’으로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부 제안대로 문구를 바꾸더라도 특위 위원장의 권한을 무력화시킨 문제점은 그대로 남는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정부안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밝혔는데도 이런 무성의한 태도에 깊은 불신을 느낀다”고 했다.

권영빈 특위 상임위원은 “정부 시행령안의 입법예고 시한(6일)이 다 됐지만, 시행령안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표되기 전까지는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 시간이 있는 만큼 정부 시행령안 철회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차관회의와 법제처 심사를 거쳐 국무회의에 상정되는 과정을 고려할 때, 특별법 시행령안은 오는 14일 국무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위 내부에선 정부 시행령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특위 차원의 시행령 개정안을 다시 내는 한편 별정직 조사관을 우선 채용해 진상조사에 착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광명/방준호, 안산/김일우, 오승훈 허승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