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4-02-10 11:15기사수정 2014-02-10 11:15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지상목 부장판사)는 권모씨 등 희생자 36명의 유족 15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유족들에게 39억70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경북 예천군 호명면의 자택에 있던 권씨는 1949년 3월 초순께 영문도 모른 채 호명지서 경찰에게 끌려나와 총살당했다. 당시 '좌익소탕작전' 중이던 경찰과 군인들은 빨치산이나 인민군에게 협력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권씨를 비롯해 경북 예천과 문경지역 주민 54명을 학살했다.

이로부터 61년여가 지난 2010년 6월 3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목격자나 참고인 진술, 양민피살자신고서 등의 자료를 토대로 예천·문경 민간인 희생사건의 당사자 36명이 무고하게 희생당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권씨 등 희생자 36명의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자료와 여러 사정들을 종합해 볼 때 희생자들은 경찰들에 의해 불법적으로 살해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헌법상 기본권인 생명권,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됐고 이로 인해 그 유족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이 명백한 만큼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목격자의 진술이 없고 양민피살자 신고서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더라도 배상받을 권리를 인정해줬다. 당시 경찰에 의해 저질러진 총살은 비공개 장소에서 불법으로 이뤄진 것이므로 목격자가 존재하거나 구체적 경위를 알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 사회적 불이익을 우려해 사망신고를 회피했을 사정도 있다고 봤다.

정부측은 "희생자들이 사망한 지 60년 이상이 경과해 손해배상청구 시효가 소멸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오히려 "국가가 '과거사정리법' 제정을 통해 피해자와 유족들의 피해회복 조치를 선언했으나 실행방법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며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사법적 구제방법을 수용하겠다는 취지이며 소송에서 새삼 소멸시효를 주장해 배상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의사도 내포돼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는 불법 행위로 인한 피해 정도, 유족들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 사회와 국가로부터 받았을 차별과 냉대, 이로 인한 경제적 궁핍, 60년 이상 국가가 손해를 방치한 점 등을 고려해 희생자 본인에게 8000만원, 배우자에게 2000만원, 부모나 자녀에게 1000만원, 형제자매에게 500만원을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정했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