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11 19:59수정 : 2015.02.11 22:32

가족들 “낮은 형 선고 이해 안돼” 세월호 침몰사고 때 구조업무를 태만히 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김경일 전 목포해경 123정 정장에 대한 재판이 열린 11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법 앞에서 ‘4·16가족협의회’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이 김 전 정장에게 징역 4년의 낮은 형을 선고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광주/뉴시스

123정장 과실치사 실형 의미

법원이 11일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현장 지휘관이었던 김경일(57) 전 목포해경 123정 정장(경위)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4년형을 선고한 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사건을 심리한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는 김 전 정장이 퇴선 유도 등 현장 지휘관으로서 해야 할 조치(주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일부 승객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과실이 있다고 봤다. 구조 책임을 진 공무원이 적절한 대처를 못한 과실로 승객들이 숨졌다는 인과관계를 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이에 따라 유족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경우, 국가가 부분적으로라도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공동으로 배상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세월호 유족들은 그동안 ‘정부가 부실 대응으로 충분히 살릴 수도 있었던 승객들을 구하지 못했다’며 구조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김 전 정장 수사 과정에서 법무부가 업무상 과실치사죄 적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비쳤던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당시 광주지검 수사팀과 대검찰청은 김 전 정장한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으나, 법무부는 이 혐의 적용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에 실패한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꼴인데다, 세월호 유족이 손해배상 소송을 내면 국가에 불리하게 작용하리란 점을 고려한 판단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해경지휘관 형사책임 첫 인정
국가에 손배청구 근거 마련

가족대책위는 유감 뜻
“476명 전원 구조 가능
시뮬레이션 결과 나왔는데
56명만 과실치사 인정”


다만, 재판부는 김 전 정장의 업무상 과실과 피해자들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분적으로만 인정했다. 재판부는 “김 전 정장이 사고 당일 오전 9시44분께 선내의 상황을 파악해 구조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도 퇴선방송 실시와 퇴선유도 조치를 지휘하지 않은 것은 업무상 과실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세월호가 당시 오전 9시37분께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와) 교신을 끊었다는 점을 들어, 김 전 정장이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승객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 재판부는 123정이 퇴선명령과 퇴선유도 조처를 했을 경우, “세월호 4층 선미 3개 선실에 있던 승객 56명은 탈출할 수 있었다”고 봤다. 광주지법 관계자는 “나머지 승객들은 당시 퇴선방송이 들리지 않았거나 설령 퇴선방송이 들렸다고 하더라도 탈출하기가 쉽지 않았을 상황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세월호 가족 대책위원회 쪽의 박주민 변호사는 “당시 퇴선지시만 있었다면 9분28초면 476명 전원 구조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나왔는데, 56명에 대해서만 업무상 과실치사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자의적으로 결론을 냈다는 느낌이 든다”며 “애초 검찰이 김 전 정장뿐 아니라 해경 지휘 라인에 있었던 간부들을 함께 기소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국내에서 구조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구조 실패’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해 처벌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구조 현장 책임자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인정한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생했던 대형 재난사고와 관련해 처벌을 받은 공무원들은 대부분 인허가나 감독 업무를 했던 이들이었다. 처벌도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광주/정대하, 노현웅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