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13 20:58수정 : 2015.01.13 21:46

잊지 않겠습니다

PD 꿈꾸던 정수에게

사랑하는 내 아들 정수에게.

“엄마 저 없으면 어떡해요?”라는 너의 말에 엄마는 “그게 무슨 소리야?”라며 다그쳐 물었지만, 너는 애써 태연하게 말했지. “엄마, 배가 미쳤나 봐요. 물 들어오고, 컨테이너도 떨어지고…”라고. 그때까지 정말 우리가 이렇게 이별할 줄은 몰랐어. 너와 그렇게 죽어서도 못 잊을 이별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 아무 죄 없는 너희가 희생될 줄은 몰랐다. 그저 긴 기다림의 끝에서 어떤 모습이든 살아서만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도했는데.

자존심 강했던 너였지만 엄마에겐 항상 너그러웠던 아들. 길을 걷다가도 팔을 내밀며 “엄마, 어디 가서 이렇게 멋진 남자 팔짱을 껴봐요”라며 너스레를 떨었지. 둘이서 서로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정도로 그렇게 멋진 아들로 커 줬지. 1997년 3월1일 오전 9시30분 내게 왔고,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30분 마지막 통화를 하고, 17년 1개월 15일 동안 엄마 곁에 잠시 머물다 떠나버렸어.

엄마, 전 연극이 너무 좋아요. 피디가 될 거라며 네 꿈을 향해 열심히 연극부를 쫓아다니던 그 모습이 너무 애절하게 그립다. 새 학기 시작해서는 다이어트 한다고 매주 야자가 없던 금요일에만 둘이 만나 해물찜 먹으러 갔었는데. 봄 여행을 우리와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린 아들,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만 하면 엄마는 가슴이 저린다. 매일 매일 가슴으로 널 부른다.

마지막 네 손 꼭 잡고 얼굴 비비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엄마는 힘든 날도 슬픈 날도 너로 인해 힘을 낼 수 있었는데, 결국 너를 이렇게 보내는구나. 엄마 아들 이어서 너무 고맙고 널 젤루 사랑한다. 넌 내게 최고였다”라고. 그런데 사고 이후 19일만에 모니터로 본 아들 얼굴은 온통 피멍투성이었어. 그래도 한눈에 내 아들인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렇게 보고 싶은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잡고 싶던 손은 팔뚝을 살짝 만져보는 걸로 끝내야했어.

봄 여행 출발하기 전날 잘 다녀오라는 우리들의 배웅에 쑥스러워하며 “저 이민 가요?”라고 웃으며 말했던 아들. 언제나처럼 “정수 컴백홈”하면서 돌아올 줄 알았어. 엄마는 오늘도 집에 들어오며 “정수야, 엄마 왔다”고 말했어. 그리고 또 한 번 무너지는 가슴을 추스르며 우리 아들이 너무 그립고 우리 아들을 빨리 보고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엄마가 우리 아들 만나러가면 한번만 만나주라. 그립고, 그립고, 그리웠다고 꼭 안아주고 예전처럼 등을 토닥여줄게. “엄마의 1번 최정수”라고 불러줄게.

아빠는 아들이 그동안 자기를 많이 이해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해. 정호는 제일 좋아했던 사람이 정수형이고, 나중에 꼭 만날 거니깐 잘 쉬고 있으래. 인혁이는 형 멋진 목소리가 제일 멋있었데. 가인이는 쑥스러워하며 미안하데. 이모는 매일 중국에서 하늘을 보며 정수가 보고 싶다며 울고 지낸데. 정수야 건강하고 거기서 행복하길 바랄게. 엄마가.


최정수군은


단원고 2학년 8반 최정수(17)군은 어려서부터 남을 배려했다. 태권도를 했던 정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태권도 대회에 나갔다. 결승전에 올라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동갑내기와 겨루게 됐다. 정수는 이 아이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시상식에서 이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때려서 아프게 해서 미안해.” 길을 가다가 손수레에 파지 등을 싣고 가는 할머니를 보면 꼭 달려가서 손수레를 밀어주던 아이였다.


정수는 맞벌이하는 엄마도 세심하게 챙겼다. 어느 날 엄마는 일요일 아침 늦게 잠에서 깼다. 식사 준비를 하려고 부엌으로 가면서 큰아들 정수와 중학교 1학년인 남동생에게 “밥 먹어야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수는 “오늘은 최 셰프가 할게”라고 나섰다. 팔을 걷어붙이고 피곤한 엄마를 대신해 요리를 했다. 특히 김치볶음밥과 두부부침을 맛있게 만들었다.


정수는 중학생 때 인터넷을 뒤져 미역국 끓이는 법을 배웠다. 엄마 생일(1월12일)에 직접 미역국을 끓여주기 위해서였다. 그 뒤 매년 엄마 생일이면 직접 미역국을 만들어줬다. 정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늘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우산을 가져갔는지를 물었다.


영화와 연극을 좋아했던 정수는 방송사 피디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5월4일 가족에게 돌아와 지금은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