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어떻게 분단됐는가
맥아더는 한국을 사랑했을까

등록 : 2012.08.31 19:37수정 : 2012.08.3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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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분단, 누구의 책임인가?

한반도 분단, 누구의 책임인가?
김계동 지음/명인문화사·9800원

맥아더와 한국전쟁
이상호 지음/푸른역사·2만5000원

일본 패전 뒤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수립됐더라도 요즘처럼 독도나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문제가 불거지고 일본이 저렇게 나올 수 있었을까?

누가 한반도를 분단시켰나?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김계동 연세대 통일연구소 교수의 <한반도 분단, 누구의 책임인가?>는 가장 큰 책임을 미국에 지운다. 물론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기밀해제된 영국 쪽 문서들까지 활용한 그의 해석은 좀 색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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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와 한국전쟁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이나 중국 화북의 항일무장세력을 대일전에 투입하거나 훈련받은 한국인 특공대를 한반도나 일본에 침투시키는 ‘납코(NAPKO) 프로젝트’ 등을 추진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만일 실행됐다면 전후처리 때 한국은 당당하게 연합국 또는 전승국의 일원이 되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배제당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게다가 미국은 임시정부 자체를 끝내 승인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임시정부 요인들은 미군이 점령한 조국에 돌아올 때도 개인 자격으로 와야 했고 해방정국에서 소외당했다. 미국의 남한 단독정권 수립에 반대했던 백범은 결국 암살당했다. 2차 대전 때 연합국으로 참전한 28개국 중 9개국 정부가 ‘임시정부’였다. 프랑스도 그땐 임시정부 아니었나? 그럼에도 미국이 유독 한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광복군 등 중국 내 한인 병력의 대일전 투입을 꺼린 이유는 그들을 지원한 장제스 군 등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전후질서 재편 구상에서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가능한 한 배제하려 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한반도를 점령지처럼 군사통치를 하고 신탁통치를 고집한 것도 소련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미국은 당시 한반도 자체의 전략적 가치는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으나 그들에게 가장 긴요했던 일본을 단독 점령하고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말하자면 일본의 안보를 위해 한반도를 통째로 다른 경쟁세력한테 넘겨서는 안 된다고 봤다. 신탁통치 방안은 당시 한반도 점령에 훨씬 더 유리한 입지를 갖고 있던 소련에 한반도를 통째로 넘겨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물론 미국이나 소련이나 자국 이익 때문이었지 한반도 주민들 처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부분은 열렬한 기독교인이요 반공주의자였던 맥아더를 매개로 분단과 한국전쟁을 재해석한 <맥아더와 한국전쟁>의 시선과도 겹친다. 이 책에 따르면 맥아더는 한국전쟁 발발 뒤에야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에 눈떴으며, 전쟁 중에도 중국군이 대규모로 개입하진 않을 것이라는 오산을 마지막 순간까지 버리지 않았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도 그 사실을 지적했다. <맥아더…>는 맥아더의 머리를 사로잡았던 건 일본이었으며, 한국은 단지 일본 방어를 위한 종속적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을 배제한 ‘애치슨 라인’도 해상권에 의한 세계 제패를 꿈꾼 당시 맥아더의 극동군사령부 전략가들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맥아더가 사랑한 건 일본이었으며, 그가 가끔 발설한 ‘한국 사랑’은 본심과 다른 정치적 발언이요, 일부 한국인들의 과도한 맥아더 사랑은 오해의 소산일 가능성이 짙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그런데 한반도 전체를 쉽게 장악할 수 있었던 소련은 왜 미국의 분할점령안에 동의했을까? <한반도 분단…>은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하면서, 무엇보다도 일본 분할점령에 대한 소련의 기대 때문이었다고 본다. 소련 역시 미국처럼 일본에서의 기득권 확보를 우선시했고 홋카이도 북쪽 절반을 차지할 속셈으로 미국의 제의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거꾸로 일본을 통째로 차지하기 위해 한반도 절반은 내주어도 좋다, 서울을 포함한 남쪽만 차지해도 좋다고 생각했고 결국 미국의 뜻대로 됐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