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 민교협 14.05.30 23:49
     
 
fontS.php?body_no=2507900&pidx=120331175
mxmbjzkt2.JPG

이제는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속으로 병들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이윤을 크게 키운다며 부패의 관행을 묵인해왔고, 효율을 높인다며 약자를 희생시키는 파괴적 경쟁에 몰두해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심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이 냉혹한 세상이 마치 처음부터 그러한 것인 양 받아들이면서 우리 주변의 고통을 외면했고, 우리 자신을 성찰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아이들이, 그 청춘이, 미처 꽃피우지 못한 그 젊음이 우리의 무책임과 비겁함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광기였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우리의 미래들을 바다 속으로 가라앉힌 것은 우리 시대의 탐욕이 만들어낸 조직적 광기였습니다.

이윤, 효율성, 경쟁, 집중, 특화라는 말들이 미친 듯이 우리 사회를 헤집고 다니면서 수많은 곳에서 국가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 안전망에 구멍을 내었습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세월호 참사에서 고스란히 바라보았습니다. 선박업체, 감독기관, 해양경찰은 구조적 병폐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먼저 달아나는 선장과 선원들, 속수무책으로 바라만보는 해경들, 우왕좌왕하는 관료들,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탑승객의 생명을 위해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뒷수습에 나선 정부도, 이를 보도하는 언론도 거짓, 왜곡, 은폐, 축소, 위장을 일삼는 데 급급했습니다. 위로의 말, 사과의 표현, 대책 마련, 언론 보도, 그 어디에도 진정성과 따뜻함이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는 모두 중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조난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보이는 기우뚱한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절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수들이 전문성과 기능화의 틀에 갇혀 이 아픈 사회를 치유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철저하게 반성합니다.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준 우리의 작은 영웅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 뜻있는 교사들의 슬픔과 절규에 함께 고개를 숙입니다. 여러 언론인들의 자기반성적 성찰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그동안의 침묵과 무기력을 떨쳐내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하나하나 지적하고, 정부와 관료들의 안일과 무능력을 질타하고, 정치인들의 파당적 행태를 비판하는 대학교수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이것이 세월호 참사에 몸과 마음이 찢겨나간 유가족들의 위로할 길 없는 커다란 슬픔을 함께 나누는 길이고,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아내는 길이며, 살아있는 우리들의 의무이자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유가족과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청합니다.

1. 각계의 분노와 참회를 정치적 편가르기로 악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1. 언론 통제를 중지하고, 국민의 양심적 의사표현을 존중해야 합니다.

1.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의 엄정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1. 국민의 생명과 안전 중심의 국정기조를 확립해야 합니다.


2014년 5월 28일

경북대 교수 117명 일동

강진호, 강호영, 권덕기, 권선국, 권소희, 권철우, 김감영, 김건엽, 김규종, 김기현, 김두식, 김미정, 김병수,
김병욱, 김상호, 김석진, 김성택, 김영모, 김영화, 김유경, 김윤상, 김재범, 김재석, 김정일, 김주현, 김진숙,
김진호, 김창록, 김창우, 김형래, 김효신, 나원준, 노진철, 도중회, 류진춘, 문계완, 문성학, 박모라, 박순용,
박우식, 박정순, 박종석, 박지구, 박진완, 배성구, 배한익, 변진석, 성영관, 성희자, 손광락, 손일권, 송영숙,
신봉기, 신홍인, 심현진, 양승경, 엄창옥, 오영수, 오용석, 우인수, 윤영순, 윤재석, 윤종필, 이강은, 이강호,
이광률, 이광우, 이기웅, 이덕형, 이동식, 이동원, 이동진, 이만휘, 이명현, 이병휴, 이수현, 이영경, 이은주,
이재하, 이정동, 이정우, 이철우, 이청희, 이형철, 임민정, 임병훈, 임승택, 임종진, 임충규, 임현락, 전현수,
정병호, 정우락, 정재훈, 정호영, 정희석, 조유제, 조재모, 조주은, 주보돈, 진수미, 차현화, 채권석, 채장수,
최윤정, 최인철, 최정규, 최제용, 최중섭, 최호명, 하정희, 허정애, 홍남수, 황보영조, 황위주, 황재찬, 황창순
(이상 가나다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