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31 18:40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

다시 새해를 맞습니다. 올해는 일제 침략에서 해방돼 광복을 맞이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70년 전 8월15일 해방을 맞이한 순간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큰 희망과 꿈에 부풀었을지. 그때는 모두들 장차 무한히 펼쳐질 신천지를 기대하면서 그동안의 고통을 씻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방 후 나라가 분단되고 수백만명이 피 흘리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게 되리라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처음 기대했던 희망과는 거리가 먼 파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구상 거의 모든 국가가 안고 있는 그 흔한 종교대립이나 종족분쟁에 의한 적대적 분열이 없는 민족공동체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뜬금없이 이념의 광신도로 변해 동족, 이웃, 심지어는 제 가족을 향해 총칼을 휘두르는 야만에 빠졌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 전쟁 요소는 필요조건처럼 작용해 왔습니다. 비록 전투는 중단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닌, 언제든 파멸적 전쟁이 재개될 수 있는 휴전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위정자들은 갖은 이유를 들어 한사코 평화협정을 반대하고 평화체제를 기피합니다. 조그만 구실이라도 생기면 언제든 무력충돌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로 끊임없이 위기감과 전쟁공포를 내세워 왔습니다.


분단과 전쟁 손실 헤아리기 어려워


북한의 위협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악의 축으로 매도하면서 상식적 접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냉전 수구세력은 존립 근거를 북한의 도발적 행태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북한은 적대적 관계에서 끊임없이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줄곧 두려움과 적대의식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모순과 인적 물적 희생과 손실은 헤아리기조차 불가능합니다. 예컨대 젊은이들은 반도 안에 갇혀 사상·이념·신분상의 온갖 제약 속에 자기계발에 전념해야 할 청춘을 할애해 총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지속된 70년의 역사를 뒷날 어찌 기록하고 배우게 될지 생각만으로도 난감해집니다.

한반도의 전쟁은 국제적 냉전을 통해 온 세상으로 전이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세계 패권을 움켜쥔 미국을 추수하면서 전시작전권까지 내맡긴 채 한반도를 세계 최고의 첨예한 군사적 대결지대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최근 위정자들은 북한 핵을 구실삼아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이라는 밀약까지 추진하면서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거들고 있습니다. 이렇듯 국제적 분쟁을 자초하면서 민족의 안위나 장래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세계사에서 이념대립의 냉전체제는 이미 오래전 붕괴되었음에도 국가보안법이 유지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이념을 내세워 기본권을 탄압하고 통제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보안법은 남북 분단에 따른 이념분화 과정에서 반공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제정된 임시적 특례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안법은 오늘날까지 각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물론 양심에 따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통제와 이에 기반을 둔 배타적 기득권을 옹호하면서 정권안보에 오용되고 있습니다.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을 제약하면서 민주주의는 물론 공존공영의 민족공동체를 지향하는 사고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계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가를 넘어 전 인류와 연대하면서 존중받을 수 없습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조차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보안법이 유지되어야 할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서독처럼 긴 안목의 통일정책 펼쳐야


분단체제에 편승한 기득권층의 수구 논리에 민족통일의 의지도 훼손되고 있습니다. 자칫 과거 발해국을 잃었듯 남북이 영구히 분리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됩니다. 민족사는 오직 통일의 길을 통해서만 파국을 면하고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보안법 등 냉전시대 유물을 끌고는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이라도 위정자들이 서독의 동방정책 같은 긴 안목의 정책을 펼친다면 통일은 결코 멀리 있지 않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통일민족사는 1500년이고 분단 역사는 70년에 불과합니다. 이제 그 70년을 되돌려 통일로 내디뎌야 합니다.

지난해 미국은 쿠바와 53년 만에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의 쿠바 고립 정책은 실패했다고 솔직히 시인하면서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반성했습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우리가 스스로 만든 ‘이념의 시멘트’에 계속 갇혀 있는 데 따르는 위험과 비용보다,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데 따르는 위험과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는 우리의 확고한 믿음을 반영한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면서 좋아집니다.

왜 한국의 지도자들에게는 그런 지혜가 부족할까요. 한국 현대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치열하게 전개한 민주화운동에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위기의 순간마다 좌절하지 않고 돌파구를 연 민중의 민주화운동을 통해서 괄목할 민주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이는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한 문화적 역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국은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사회통합과 발전을 이루어왔으며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수용하여 공동체를 성립시켰습니다. 그 기반 위에서 변화의 요구와 사회통합을 함께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그동안 어렵게 이룬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한 차원 승화된 민족사의 발전을 이룩할 때입니다. 만일 정치 파행과 위정자들의 무능이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의 위상은 어느 나라 못지않았을 것입니다. 현재 안고 있는 과제들을 해소하지 못하고 후손에게 그대로 떠넘긴다면 이를 떠안은 후손들조차 불행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멈출 수 없는 역사 진보와 사회 민주화


올 한해 시급한 선거제도 개편과 헌법 개정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70년을 기약하기를 희망합니다. 현재 위헌 결정으로 제기된 선거구 문제를 단순히 유권자 수에 따라 재조정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국회의원 선거제는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대변하지 못해 왔습니다. 유효 득표의 30~40%로 당선되고 그들이 모여 절대다수 의석을 구성해서 정치를 흑 아니면 백이라는 양단으로 재단하는 구도는 소수의 횡포에 지나지 않습니다. 국회 운영이 자주 파행을 겪게 되는 데는 다양성이 반영될 수 없는 제도적 결함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단지 인구 편차만을 고려한다면 소외되고 차별받는 농촌 같은 경우 지역 대표성을 잃고 더욱 고립될 것입니다. 사실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은 농촌과 농민의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필요하다면 국회의원 정원을 크게 늘려서라도 이번 기회에 오랫동안 유효한 방안으로 평가받던 독일식 선거제도 등을 참고해서 획기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 현행 헌법은 6월 항쟁의 성과이기는 하지만 당시 다급한 상황에서 과도기적으로 제정된 측면이 있습니다. 제정 이래 보완해야 할 문제점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실제로도 변화하는 현실에 비추어 새로운 헌법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독재와 쿠데타와 정변으로 얼룩졌던 지난 70년의 파행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새로운 헌법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오늘날 수구언론은 안보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파렴치한 위선을 일삼으며 언론권력으로 통제받지 않는 권부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사법부는 권력의 향방을 좇아 기회주의적으로 억지 사이비 논리를 끌어다 반민주 폭정의 하수인 기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영향력은 갈수록 막강해지고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임시고용, 날품팔이 상태에서 하루하루 생존에 급급할 수밖에 없고 사회 양극화는 심해져 1 대 99로 나뉜 세상이 되었습니다.

수구세력의 편집광적 준동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진보와 사회의 민주화를 멈출 수 없습니다. 어느 사회든 변화에서 정체되면 세계사 흐름에서 뒤처지다가 끝내 낙오하기 때문입니다. 새해는 어둡고 안타까웠던 지난 세월이 역사의 기록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