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15 21:30

잊지 않겠습니다

야구선수 꿈꾸던 중근에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집에 없어도 네가 사용하던 물건은 모두 그대로 있네. 사진 앞에는 네가 좋아했던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사인해준 야구공이 그대로 있단다. 엄마는 날마다 아들이 보고 싶다고 중얼거리다가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단다.

아들아, 너무나도 보고 싶다. 베이스 기타를 치던 모습이 너무 멋졌는데. 아빠는 차에 네 명찰과 사진을 항상 걸고 다닌다. 퇴근 후에는 세월호 가족들 간담회에 열심히 다니며 하루를 보낸단다. 형은 내년 1월 중순이면 군대에 간단다. 아들을 보내고 아픔이 이렇게 큰데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하다니….

6월8일 밤 11시20분에 ‘292번’으로 발견돼 네 얼굴을 보지도 만져 보지도 못하고 그냥 보내야만 해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구나. 아들이 없는 생일파티를 하는 슬픈 시간을 보냈지. 금방이라도 “배고파요, 밥 주세요” 하며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데….

야구 하는 것이 꿈이었던 아들, 천국에서 야구선수가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중에는 경찰대를 가겠다고 했지. 엄마에게는 수다쟁이처럼 조잘조잘 이야기를 잘했던 아들.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 천국에서 친구들과 건강히 잘 지내고, 사랑한다.


안중근군은


단원고 2학년 7반 안중근(17)군은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 매일 친구들과 야구만 했다. 중학교 때 야구를 하다가 어깨 인대를 심하게 다쳤다. 아빠와 엄마는 중근이에게 야구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중근이는 틈틈이 야구를 계속했다. 중근이는 프로야구팀 두산 베어스 팬이었다.


중근이가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아빠는 아들에게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중근이는 아빠에게 기타 코드표를 건네주며 연습하라고 하고는 수학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는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21번 안중근’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걸어 놓고 하염없이 아들을 기다렸다. 21번은 중근이의 반 출석번호였다. 희생된 다른 학생들은 하나둘씩 부모 곁으로 돌아왔지만, 중근이는 6월이 시작돼도 물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6월8일에야 물 밖으로 나왔다. 희생된 2학년 7반 학생 중에서 마지막이었다. 중근이의 반은 단원고 2학년 10개 반 가운데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33명이 수학여행에 참가했는데, 단 1명만 구조됐다. 중근이는 지금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