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24 20:20수정 : 2014.12.24 21:56

그림 박재동 화백

잊지 않겠습니다

군인이 되겠다던 민성에게

사랑하는 아들, 민성이에게.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이 아빠는 항상 네가 학교 가는 것도 보지 못했지. 수학여행 가던 날 아침에도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집을 나선 너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아들아, 너를 떠나보낸 시간이 벌써 8개월이 넘었구나. 보고 싶다. 지금도 나는 네가 금방이라도 “다녀왔습니다” 하고 문을 열며 들어올 것만 같은데.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너는 학교에 다녀와 너의 방 책상 밑에 들어가서 울고 있었지. 엄마가 그런 너를 보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을 때 너는 친구가 때렸다고 했었지. 그런데 너는 “나도 친구를 때릴 수도, 혼내 줄 수도 있었는데 만약 내가 친구를 때리면 나중에 친구 엄마와 엄마가 서로 싸울 것 같아서 참았다가 집에 와서 속이 상해 울었다”고 했었지. 그날 아빠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에게 고맙기도 했고, 속상하기도 했단다. 이렇게 빨리 철이 들어 착했던 우리 아들을 떠나보내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구나.

너를 떠나보낸 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아빠는 너를 잊을 수가 없다. 나중에 엄마, 아빠가 너를 찾아갈 때까지 거기서 잘 지내고 있으렴. 보고 싶은 내 아들, 사랑한다. 엄마, 아빠가.


김민성군은


“아빠 절대 죽으면 안 돼.”


민성이가 다섯살 때였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어떤 아버지가 자식들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 나왔다. 민성이는 어두운 얼굴로 아빠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안 죽고 민성이 옆에 꼭 있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민성이는 그제야 안심이 됐는지 환하게 웃었다. 그랬던 민성이는 4월16일, 아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단원고 2학년 5반 김민성(17)군은 특수부대에서 직업군인을 하고 싶다고 늘 말했다. 운동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 태권도 도장에 다니며 3단을 땄다.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킥복싱 체육관에 다녔다. 나중에 직업군인이 돼서 엄마, 아빠에게 효도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민성이에게는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닌 두살 터울의 대학생 누나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서 누나와 특히 친했다. 민성이는 막내였지만, 조용하면서 혼자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어른 같은 아이였다.


4월15일 아침 엄마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들에게 “돌아오면 생일 파티 해주겠다”고 말했다. 민성이의 생일은 4월21일이었다. 하지만 생일 파티는 결국 하지 못했다. 민성이는 4월29일 가족의 곁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100번째 편지글…슬픈 기록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