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25 00:46

‘세월호 유족’ 고운이 엄마가 세상의 엄마들에게

고운이와 같은 예쁜 자식을 둔 세상의 다른 모든 어머니들께.


저희 집은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아빠, 엄마, 큰딸 고운이, 남동생, 강아지 곰순이. 이 다섯 식구가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고운이는 늘 저에게 말했습니다. 100년, 500년 엄마랑 아빠랑 같이 오래오래 살겠다고. 고운이와 남동생을 결혼시키고 손자까지 보며 그렇게 늙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4월16일, 세월호와 함께 고운이가 바닷속으로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갑자기 고운이를 잃고 저희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평범한 엄마였던 저는 이 허망한 죽음의 이유를 밝혀달라며 길에 나가 서명을 받았습니다. 지나가는 부모들에게 도와달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앞에 나가 용기를 내 고운이의 이야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농성도 했습니다. 자식은 엄마에게 정말 대단한 존재더군요.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엄마로 만들었으니까요.


고운이를 잃고 나서 과거를 돌이켜봅니다. 이 못난 엄마는 딸이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욕심 때문에 고운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 좋은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키기 바빴습니다. 제가 만든 틀에만 아이를 끼워 맞춰 다그치고 잔소리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운이를 잃고 난 뒤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사랑한다고 더 자주 말해줬어야 했습니다. 행복한 추억을 더 많이 만들어줬어야 했습니다. 다른 어머니들도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내 만족을 위해서인지, 아이를 위해서인지 한번 돌이켜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갑자기 아이를 잃게 되면 그 과오는 돌이킬 수가 없게 돼버립니다.


바닷속 사라진 아이들 기억해줘요,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세월호 참사로 숨진 안산 단원고 2학년 1반 한고운양의 엄마 윤명순씨가 24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집에서 한양이 쓰던 책상에 앉아 <한겨레>의 세월호 참사 기획 ‘잊지 않겠습니다’ 연재에 실린 딸의 얼굴 그림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안산/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고운이를 잃고 나서 저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따가운 시선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국가에서 알아서 해줄 텐데 왜 유난을 떠느냐”, “세월호 참사 때문에 국가 경제가 죽어 장사가 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보상금을 챙기려고 그러냐”…. 이런 말들이 저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저희를 지지해주던 여론이 뒤돌아설까 봐 두려웠습니다. 무지하고, 쓸모없고, 아무런 힘도 없는 엄마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저희 부모들을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신 분들도 많아 한편으로는 든든했습니다. 몇 시간씩 걸리는 경기도 안산 분향소를 찾아와주시고, 수많은 분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이 수많은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나라를 바꾸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정말 눈물나도록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저희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세월호 특별법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진 상태로 만들어졌습니다. 앞으로 진상규명의 과정은 여전히 힘들 것 같습니다.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남의 일일지 모르겠지만, 내일은 바로 우리 이웃과 나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함께해주시며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고운이를 잃고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벌써 크리스마스네요. 거리에는 아이들의 손을 잡은 부모들의 행복한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제 곁에는 고운이가 없네요. 제 영혼을 팔아서라도 시간을 4월16일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은 날입니다. 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입니다. 앞으로 저 같은 비극이 다른 어머니들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부디 수많은 꿈과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졌던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주세요.


윤명순(고운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