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22 20:44

잊지 않겠습니다

만화·게임 좋아했던 건우에게 
 

하늘 아래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 건우야.

입버릇처럼 “너 없으면 엄만 못살아, 따라갈 거야”라고 말하곤 했는데,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숨 쉬고 살아있다는 게 너무 미안하다. 우리 건우는 참 정이 많았지. 낮에 맛있는 걸 먹으면 꼭 엄마, 아빠 꺼 챙겨놓고, 엄마 서랍엔 들꽃을 꺾어다 넣어 놓곤 했지.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퇴근시간에 맞춰 보일러 틀고 온 방에 이불 깔아 놓고 “엄마 몸 녹여”라고 했는데. 10살 터울인 남동생 대학 때부턴 자기가 키운다고, 노후준비하라던 든든한 내 아들.

아직도 엄마는 실감이 나질 않아. 네 또래 아이가 “엄마”하고 부르면, 너인 거 같아 돌아보고. 네가 아니라서 눈물지으며 가던 길 다시 걸어가고. 다시 한 번만, 딱 한번이라도 좋으니 네가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다. 하늘이 맑으면 네가 보고 싶어 서럽고 하늘이 흐리면 울 아들 쓸쓸할까봐 슬퍼.

엄만 울보가 됐어. 버스에서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문득 복받쳐 오르는 슬픔에 눈가가 마를 날이 없단다. 아빠는 엄마가 슬퍼할까봐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 맘이 더 아프단다. 네 동생은 “형아, 방에만 있으면 심심하겠다”면서 너의 사진을 컴퓨터 책상 의자에 올려놓기도 하고, 사진 속의 너와 묵찌빠도 하고 씨름도 하며 널 그리워한단다. 어릴 적 너의 얘길 자주 물어봐. 닮고 싶은가 봐.

가족들에게 사랑을 알게 해 주고 별이 된 내 아들, 건우야. 얼마 전 별이 되신 할아버지랑 같이 따뜻하고 아픔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잘지 내고 있어. 네 좌우명처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네 동생 잘 키워놓고 엄마가 너 찾으러 갈게. 그 땐 우리 아들이 엄마 한 번만 안아주라. 

밤마다 “잘자. 사랑해. 좋은 꿈꿔. 알라뷰”하고 인사하던 우리 건우. 이제는 동생이 네 사진 앞에 인사한다. “형아. 잘자. 사랑해. 좋은 꿈꿔. 알라뷰”하고. 우리 건우. 잘자. 사랑해. 좋은 꿈꿔. 알라뷰.

-엄마가-

 

영원히 누나의 첫째 동생인 큰애기 임건우. “다녀왔습니다”라는 한마디면 충분했을 너의 수학여행이 눈물과 그리움으로 가득 찬 여행이 되어버린 지도 벌써 8개월 째네. 이제는 애기들이랑 숨바꼭질할 때 너의 등 뒤에 숨을 수도 없고, “큰애기”하고 부르면 늦더라도 꼬박꼬박 답장해주던 너의 메시지도 받을 순 없네. 언제나 어디서나 예쁘게 허허 웃으며 함께해주길. 건우야, 사랑해. 그리고 보고 싶어.

-서영이 누나가-

 

첫눈이 이렇게 펑펑 소담스럽게 내리는 걸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건우, 네가 내려주는 눈인가? 아주 널 닮아서 소담소담 소복소복 예쁘게도 내린다. 이 눈을 같이 볼 수 없어 너무 안타깝지만 큰 엄만 늘 건우와 같이 보고 있다고 믿어. 늘 맘속에 같이 할 거고, 사랑해.

-건우의 큰큰엄마가-

 

건우야, 지희 누나다. 오늘도 가족들끼리 모이는 자리를 가졌어. 이런 자리도 건우 덕분에 자주 생긴 거 같다? 건우도 항상 옆에서 같이 웃고 있을 거라 생각해. 너무 보고 싶다. 사랑해.

-건우를 사랑하는 지희 누나가-

 

건우야, 큰큰아빠야.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여기에 있는 우리도 건우 덕분에 더욱더 하나가 되어서 우리 가족 모두가 건우한테 많은 고마움을 느끼면서 잘지내고 있다. 다시 볼 수 있을 때 더욱 많이 사랑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큰큰아빠의 바람이야. 앞으로도 우리 건우 잊지 않고, 우리 가족 모두가 사랑하면서 살 거야. 사랑하는 건우도 할머니 할아버지 큰큰아빠, 큰큰엄마, 큰아빠, 큰엄마, 고모부, 고모, 형, 누나, 동생 꼭 기억하고, 알았지? 다음엔 꼭꼭 많이 아껴주고 많이 사랑하며 살자. 사랑한다.

-큰아빠가-

 

이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건 시간이구나. 벌써 겨울이 왔어. 이제 형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텐데 너의 용돈은 건이 한 테로 가겠구나. ㅎㅎㅎ. 내가 형이지만 큼직한 너의 등에 한번 더 업히고 싶다. 사랑한다.

-너의 우상 큰형 임원석이-

 

어제는 건이 교복 바지가 터져서 세탁소에서 수선해서 왔는데 건우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건우도 교복 바지 많이 터지고 헤져서 많이 수선했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시네. 이런 사소한 일도 우리 건우를 많이 생각나게 하네. 둘째 큰아빠는 늘 우리 건우가 함께 같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너무 보고 싶고, 그립고 사랑한다.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아들이며 10살 어린 동생에게는 태산같이 큰 산이였던 건우는 겁많은 엄마를 위해 본인도 겁나지만 언제나 든든하게 지켜주던 사랑스런 아들 이였다. 변호인 영화를 보고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수학여행 갔다오면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 되겠다고 했는데, 그 꿈조차 시도도 못해보고 하늘의 별이 되게 해서 미안하다. 아픔 없는 그곳에서 못다한 꿈 이루며 행복하게 즐겁게 씩씩하게 살기 바래.

-둘째 큰이모-


임건우군은


매일 아침 7시30분, 직장에 다니는 엄마는 늘 건우보다 10분 일찍 집을 나섰다. 그래서 엄마는 건우가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본 기억이 많지 않다.


건우가 수학여행을 떠나던 4월15일 아침, 엄마는 왠지 모르게 건우가 캐리어를 끌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10분 일찍 집에서 나선 엄마는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몰래 아들을 기다렸다. 건우는 친구와 함께 캐리어를 끌고 나타났다. 건우는 친구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며 골목길로 사라졌다. 엄마는 그렇게 건우의 뒷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보다가 회사에 지각했다. 그게 엄마가 본 마지막 건우의 모습이 됐다.


단원고 2학년 8반 임건우(17)군은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만화가나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게임을 잘해서 늘 친구들에게 게임 전략·전술을 가르쳐줬다. 그래서 주변에 친구가 많았다. 건우는 5월1일 가족의 품에 돌아와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