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16 21:11수정 : 2014.11.16 21:47

잊지 않겠습니다

카메라 감독 꿈꾸던 고운에게 엄마가

미안하고 또 미안한 딸 고운이에게.

고운아, 너는 18년 전 엄마 아빠 딸로 쉽게 찾아와주지 않고 힘들게 엄마 품에 안겼지. 긴 시간 동안 어렵게 태어났지만 나에게 행복을 안겨준 고마운 예쁜 딸, 너는 그런 고귀한 생명이었다. 그런데 4월16일 네가 꿈꾸던 모든 것들을 펼쳐보지도 못하게 미래의 시간을 통째로 빼앗아간 썩어빠진 대한민국은 뻔뻔하게 손 놓고 보고만 있었구나. 엄마에게 찾아와줘서 고마웠는데 너를 잃고서는 차라리 엄마 딸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드는구나.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미안함으로 가득하다.

엄마에게 쓴 편지에 어른이 되기 싫다며 어리광 부리면서 귀여운 딸로만 남고 싶다던 고운아. 100년, 500년 엄마 아빠랑 같이 오래오래 살자던 딸. 왜 약속 안 지키고 그곳에 가 있는 거야? 사무치게 보고 싶구나. 사진과 편지, 동영상으로 집안 구석구석에, 물건 하나하나에 쌓인 추억만으로 살아야 하는 현실에 몸과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들다. 하지만 고운이가 엄마 걱정 안 하고 마음 편하게 수학여행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씩씩하게 살려고 노력할게.

고운이가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 3년씩이나 졸라서 우리 가족이 된 곰순이도 엄마가 잘 키울게, 걱정하지 마. 고운아, 무섭고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의 기억은 깨끗이 지워버리고 엄마, 아빠, 동생이랑 있었던 행복한 추억만 기억하며 그곳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다 같이 잘 지내렴. 너희의 억울함은 걱정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과 힘을 합쳐서 꼭 밝혀줄게.

엄마, 아빠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값지고 소중한 선물이었던 한고운, 많이 많이 영원히 사랑해. 바보 엄마, 못난 엄마가.


한고운양은


사진과 영상 찍는 것을 좋아했던 단원고 2학년 1반 한고운(17)양의 꿈은 카메라 감독이었다. 키가 크고 튼튼했던 고운이는 늘 엄마에게 “나는 무거운 카메라도 잘 메고 다닐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영상 동아리를 만들었고, 학교 영상제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고운이는 서울예술대 방송영상학과에 진학한 뒤 방송사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단원고 2학년 9반 오경미(17)양과는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 친구였다. 시간만 나면 서로의 집에 놀러 다녔다. 둘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일주 만인 4월22일 함께 물 밖으로 나왔다. 장례식도 고대안산병원에서 4월26일 같은 날 치렀다. 고운이와 경미는 지금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함께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