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26 20:13

그림 박재동 화백

잊지 않겠습니다

운동도 공부도 잘했던 수빈에게

사랑하는 내 아들 수빈아, 안녕. 지금도 머나먼 곳에서 수학여행 잘하고 있는 거지? 뭐든지 척척 알아서 잘하는 우리 아들. 공부도 최고, 운동도 최고, 뭐든지 최고였던 우리 아들. 그곳에서도 다 잘하고, 잘 지내리라고 엄마는 믿고 있어.

항상 엄마, 아빠, 동생 먼저 챙기는 우리 착한 장남, 수빈이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여행 잠깐 뒤로하고 오늘 밤에는 엄마와 여행하자. 며칠 뒤면 우리 멋진 아들 생일이네. 늘 해마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잊지 못할 생일을 보내곤 했는데…. 올해도 잊지 못할 생일 파티 해줄게. 기대해.

사랑하고, 사랑하는 우리 수빈이. 보고 싶고,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우리 아들. 너를 가장 사랑하는 동생 수현이가 말했듯이 몇십 년만 기다려줘. 너 있는 곳으로 달려갈 테니…. 우리 가족은 항상 네 식구야. 아빠, 엄마, 수빈이, 수현이. 사랑하는 우리 가족 끝까지 같이하는 거 알지? 지금 이 시간도 넌 우리와 같이 있어. 그러니 외롭다 생각하지 말고 편히 있어. 항상 우리 수빈이는 우리 집의 장남이고, 엄마와 아빠의 기둥이야.

널 영원히 사랑해. 수빈아, 안녕.


이수빈군은


“엄마,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면 뭐 해줄까?”

“시골에 땅을 사줘. 강아지도 기르고 야채도 키우게.”


단원고 2학년 7반 이수빈(17)군은 엄마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런 질문을 자주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줘야 할 게 많아서 수빈이는 부자가 되고 싶어했다. 수학 선생님과 은행원, 회계사를 두고 뭐가 될지를 고민하던 아이였다.


수빈이보다 3살 어린 남동생은 형을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했다. 모든 것을 잘하는 완벽한 형이었기 때문이다. 키 178㎝에 얼굴도 잘생긴 형은 공부뿐만 아니라 잘하는 게 참 많았다. 특히 수학을 잘해 학교에서 늘 장학금과 상장을 받아왔고, 운동을 좋아해서 친구들과 축구를 자주 했다. 학교에서 포켓볼 동아리 활동도 했다. 듬직하고 자신이 할 일에는 늘 최선을 다하던 형이었다. 주변에는 친구들도 많았다.


4월15일 오후 4시30분께 엄마는 학교에 찾아가 손을 흔들며 수학여행을 떠나는 수빈이를 배웅했다. 수빈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날 아침 수빈이는 침몰하던 세월호에서 결국 탈출하지 못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수빈이의 여자친구도 세월호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중에 한 생존 학생은 수빈이 엄마에게 “내가 구명보트를 타고 나오는데 수빈이가 안에서 구해달라며 객실 창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수빈이는 5월1일 엄마의 품에 돌아와 지금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다. 11월30일은 수빈이의 생일이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