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03 20:18

그림 박재동 화백

잊지 않겠습니다

호텔요리사 꿈꾸던 태민에게

사랑하는 태민이에게.

조금씩 시간이 날 때면 주말에 친구들과 극장과 노래방, 놀이공원에 다니고 축구도 하며 이제 세상의 즐거움에 눈뜨기 시작했는데…. 막내 동생도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지 못한 채 한창 꽃필 나이에 누가 너의 이 시간을 빼앗아간 거니?

아들아, 좋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던 시간을 많이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호텔요리사가 꿈이었던 아들. 작년 엄마 생일 때 만들어준 함박스테이크 너무 맛있었는데. “다음엔 더 근사하게 차려줄게, 생일 축하해” 하며 쑥스럽게 웃던 네 모습.

아들아, 엄마는 우리 태민이가 엄마 아들이어서 너무 행복했어. 고마워, 사랑해. 네가 엄마한테 준 사랑만큼 너에게 해준 것이 없고 너무 많이 받기만 한 것 같아 미안하다. 이제 엄마가 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도 너에게 해줄 수가 없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 태민아, 식구들 걱정하지 말고 아픔 없고 고통 없는 세상에서 아들이 원하는 요리사의 꿈 꼭 이루길 바랄게.

사랑한다 너무너무. 그리고 미안하다.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주지 못해서. 엄마는 아들로 인해 18년 동안 너무도 행복했다. 안녕. 태민아, 내 아들.


이태민군은


단원고 2학년 6반 이태민(17)군에게는 초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3학년 여동생들이 있었다.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는 매일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식탁에는 태민이가 준비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태민이는 바쁜 부모를 대신해 어릴 적부터 동생들을 돌봤다. 커서는 직접 동생들의 끼니를 챙겨주며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을 도맡았다.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다 보니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었다.


요리에 취미를 붙인 태민이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요리학원에 보내달라고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저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에 “고등학생이 돼서도 꿈이 변하지 않으면 요리학원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시간이 지나도 ‘호텔 요리사가 되겠다’는 태민이의 꿈은 변하지 않았다. 엄마는 지난해 태민이를 요리학원에 보내줬다.


태민이는 4월15일 아침 엄마에게 “잘 다녀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18일 만인 5월3일 발견됐다. 장례를 치른 뒤 태민이가 엄마의 꿈에 나왔다. 꿈에서 태민이는 “나 때문에 울지 말라”며 엄마를 위로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이후 태민이는 한 번도 엄마의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