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04 20:06수정 : 2014.12.05 08:38

그림 박재동 화백

잊지 않겠습니다

패션디자이너 꿈꾸던 채연에게

사랑하는 딸 채연이에게.

늘 곁에 있던 딸이 곁에 없는 게 이렇게 견디기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상상조차 못했구나. 채연이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이겨내기 어렵다. 그 빈자리 바라보며 아빠 할 수 있는 것이 그저 딸에게 미안한 마음 갖고 눈물 흘리는 것뿐이라 죄책감은 커져만 가는구나.

딸이 다시 돌아올까 싶어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딸 책상을 쓰다듬고 한숨 쉬며 하루하루를 시작하던 것이 어느덧 이만큼 시간이 흘렀구나. 동생이 언니를 못 잊어 언니 사진을 인화해서 침대 한쪽 벽을 꾸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빠 마음은 또 한번 무너지더구나.

사랑하는 딸, 채연아. 이제 아무것도 같이 할 수 없어 고통스럽지만 동생 희연이와 수연이 잘 지켜주렴. 아빠는 큰딸을 가슴속에 묻고 늘 아빠와 함께하고 늘 곁에 있을 거라고 믿을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고 희망이 되어 아프지만 한번 살아가 보려 한다.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채연이에게 늘 모진 말로 공부하라고만 했던 아빠가 미안하고 또 미안하구나. 그곳에서는 채연이 꿈인 디자이너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멋진 옷을 선물하렴. 이제는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그곳에서 아빠와 다른 세상에 있겠지만, 채연이가 부디 더 좋은 곳에서 더 행복하게 지내길 간절히 소망한다.

아빠 꿈에 나타나 아빠를 걱정하던 딸. 지금부터는 아빠 걱정은 그만하고 그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어떻게 즐겁게 보낼 것인지 계획하고 실천하는 아빠의 큰딸이 되어주렴. 아빠의 자랑스러운 장녀에게.


박채연양은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단원고 2학년 3반 박채연(17)양은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온 아빠에게 ‘아빠 힘내세요’라는 동요를 율동과 함께 불러줬다. 아빠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올 때 마중을 나가서 낑낑대며 아빠를 업어오기도 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몸집이 컸던 채연이는 여동생 두 명을 둔 듬직한 맏딸이었다.


옷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했다. 하루는 아빠에게 “패션디자이너가 돼서 돈 많이 벌면 차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빠는 웃으며 “이왕 사주는 거 벤츠를 사달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벤츠가 어떻게 생긴 승용차인지 검색해본 채연이는 “벤츠가 오리발을 닮았다”며 웃었다. 채연이는 그때부터 늘 아빠에게 “오리발을 사주겠다”고 말했다.


채연이는 세월호 참사 사흘 만인 4월18일 가족들의 품에 돌아왔다. 지금은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있다. 아빠는 매주 한 번씩 딸을 보러 그곳에 간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