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10 20:22

그림 박재동 화백

잊지 않겠습니다

약사 되겠다던 동현에게

사랑하는 아들 동현이에게.

우리 착한 아들, 천국 생활은 이전 삶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지? 잘 지내고 있지? 그곳 생활은 어때? 이 세상보다 비교가 안 될 만큼 좋은 곳이지?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도 막상 할 말이 생각이 안 나네. 이 현실을 엄마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들이 꿈에 보이더구나. 아주 예쁜 모습으로 엄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구나. 여행가기 전까지도 “엄마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혼내주겠다”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히 들리네. 엄마가 늘 연약해 약을 많이 먹는 모습을 보고, 약사의 꿈을 가졌던 아들. 살면서 병원에 거의 가지 않던 아들. 몇 년에 한번 감기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않고 약 한번 안 먹고 이겨낸 아들.

엄마 무릎에 누워 귀 청소 해달라고 어리광부리던 목소리. 늘 자신보다 남을 배려해주고 아파해주고 이해해주고. 부족한 엄마, 아빠 또한 이해해줬던 아들. 동생 수빈이하고도 말다툼할 때 많이 힘들었을 텐데 참던 아들. 여행가기 전 사랑한다고 말해줬던 아들. 명랑하고 아이 같은 목소리라서 다들 너를 다람쥐라고 불렀지. 동생 수빈이가 오빠 좋아하는 요리 만들어 입에 넣어주던 지난 시간이 너무 아파 오네.

여행가기 전 쑥스러워서 엄마랑 팔짱끼는 것조차도 안 했던 아들이 갑자기 팔짱을 꼈었지. 육개장도 맵다고 안 먹던 아들이 갑자기 육개장을 해달라고 했었지. 여행가는 날 아침에 육개장 먹으면서 밥, 국 전혀 남기지 않고 먹고 나서 “엄마 이제껏 먹은 거 중에 제일 맛있게 먹었어요”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는구나. 과일을 엄청 좋아해서 하루에도 냉장고 문을 수시로 열고 닫았었지. 나는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는 것 같아.

지나온 시간, 추억을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나 뭉클하네. 이를 어찌해야 할지 멍하구나. 앞이 깜깜해지는 이 길을 어떻게 걸어나가야 할지. 동현아, 보고 싶어. 우리 아들 늘 함께하고 있지? 여행 첫날밤 불꽃놀이에 재미있다고 보냈던 문자. ‘아들 사랑해’하니까 ‘나도 사랑혀요’라고 했었지. 너무 보고 싶어. 우리 만나는 날까지 조그만 참고 기다리자. 아들, 미안하고 사랑해.


김동현군은


4월13일 저녁, 단원고 2학년 8반 김동현(16)군의 엄마는 집에서 꽃게탕을 만들고 있었다. 아들이 수학여행을 가기 전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었다. 동현이는 오리고기와 꽃게를 잘 먹었다. 삼겹살이나 매운 음식은 싫어했다. 엄마는 동현이가 음식을 가려 먹어 살이 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요리하던 도중 꽃게에 물려 엄마의 손가락에서 피가 조금 났다. 때마침 동현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다. “동현아, 엄마 피 났어.” 엄마는 아들에게 엄살을 피우며 장난을 쳤다. 동현이는 얼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엄마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내가 혼내줄 거야.”


동현이는 착하고 순수했다. 부끄럼도 많아서 엄마와 밖에 나가면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지 않고 무뚝뚝하게 걷기만 했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떠나기 두 달 전부터 가족들이 놀랄 정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쑥 여동생에게 “사랑한다”고 말했고, 처음으로 엄마와 팔짱도 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날인 4월15일 밤 엄마는 수학여행을 떠난 동현이와 휴대전화 문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엄마는 동현이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영화 <타이타닉>을 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동현이가 탄 세월호는 마치 타이타닉호처럼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동현이는 5월4일 엄마의 품에 돌아왔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