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02 21:01

잊지 않겠습니다

건축가 꿈 꿨던 경미에게 사촌언니가

안녕, 경미야. 잘 지내고 있니? 거기서도 여기서처럼 고운이 앞에서 촐싹대다가 잔소리 듣고 그러니? 네가 여기 없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어딜 가든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네 생각만 난다. 너랑 놀러 가거나 맛 있는 거 먹으러 다녔던 곳에만 지나가면 그때 네 모습 하나하나가 아직까지 다 기억나고 눈에 밟힌다.

네 기억을 하고 있는 나는 여기 있는데, 너는 왜 지금 여기에 없니? 나는 아직도 네가 살아있는 것만 같은데 왜 현실엔 네가 없지? 네가 생각날 때마다 네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맹한 표정으로 “왜 불러?”하고 돌아볼 것만 같은데….

고민도 항상 너랑만 상담하다가 네가 없으니까 이제는 이야기할 곳도 없다. 네 사진 보고 이야기를 해도 그 사진 속에 너는 내가 아는 오경미가 아닌 거 같아서,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해주는 네가 없어서, 가끔은 허무한 느낌이 든다. 네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그런다. 나는 아직 네가 살아있는 것만 같은데, 살아있다고 믿고 싶은데, 그 믿음을 깨버리는 이 현실이, 너를 그렇게 만든 이 나라가, 너무 싫고 짜증나고 그런다.

분향소로 너를 보러 가면 경기도미술관 처음 생겼을 때 구경가자고 끌고 가던 네가 생각난다. 밤에 미술관 앞 주차장에서 알씨카(무선조종자동차) 구경하던 것도 생각나고,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 타던 것과 농구, 축구 하던 게 떠오른다. 함께 머리를 자르러 간 것과 중학교 운동회 때 우리 반 자리로 와서 모자를 달라며 애교 부리던 것, 어깨에 담 걸려서 안마해주다가 너 운 거 전부 생각난다. 그런데 너는 지금 왜 여기에 없니?

처음에 학교에서 단원고 배 침몰했다는 소식 듣고 안 믿었었는데, 하나 둘 올라오는 기사를 보고 있으면서도 살아있을 거라고 살아 돌아올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팽목항에 가서도, 사고 나고 일주일 만에 돌아와 장례식장에 영정사진으로 걸려있는 너를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는데. 장례식 첫째 날 잠도 안 자고 네 사진만 계속 보고 또 보고, 장례식 마지막 발인하는 날 지금이라도 “나 아직 안 죽었어요”하고 문 열어 달라고 소리칠 것만 같았는데. 발인 안 하면 네가 언제든지 살아 돌아올 것만 같았는데, 발인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제 네가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았던 눈물이 나오더라.

그 위에서는 여기서 못했던 것들, 네가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 하며 놀러 가고 싶었던 곳 다 다니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말 잘 듣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나중에 꿈에서 보자.


오경미양은


단원고 2학년 9반 오경미(17)양의 꿈은 건축가였다. 엄마, 아빠에게 늘 “건축가가 돼서 돈 많이 벌어, 집을 사주겠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큐브 맞추기에 빠져 살았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열심히 전자기타를 치러 다니기도 했다. 단원고에 입학해서는 연극부 활동을 했다. 얌전한 모범생이지만 동시에 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했다. 집에서는 부모 말 잘 듣고, 7살 어린 여동생도 잘 돌봤다.


경미는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이었던 4월16일 오전 6시46분께 휴대전화로 세월호 위에서 찍은 바다 사진을 엄마에게 보냈다. 경미로부터 온 마지막 연락이었다. 경미의 담임 선생님들과 단짝 친구도 배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경미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은 단원고 학생인권부장 고창석(40) 교사다. 고 교사는 세월호 사고 당시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주며 제자들의 탈출을 도운 뒤 아직까지 실종 상태다. 경미의 고1 담임인 전수영(25) 교사와 고2 담임인 최혜정(25) 교사도 학생들을 구하러 갔다가 희생됐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2학년 1반 한고운(17)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난 단짝 친구다. 둘은 사고 일주일째인 4월22일 두 시간 간격으로 발견돼 부모 품에 돌아왔다. 경미와 고운이의 장례식은 고려대 안산병원 영안실 201호와 202호에서 한날(4월26일) 치러졌다. 둘은 지금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함께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