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4 08:41수정 : 2014.04.04 11:26

국방부, 2011년 발굴 뒤 3년간 조사
유품 등 토대로 “군인 아니다” 결론
주민도 “구덩이로 몰아” 학살 증언
진실위 다시 꾸려 희생자 조사 필요

한국전쟁 때 전사한 국군 유해 발굴작업을 해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2011년 5월3~4일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서 발굴한 유해 33구가 집단학살된 민간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지금까지 이뤄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 집단 발굴 13건은 모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유족·시민단체가 했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의한 발굴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3일 국방부와 여주시, 여주유족회 등의 자료와 설명을 종합하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10년 5월 ‘왕대리 골짜기에 전사자 유해가 매장됐다’는 마을 주민의 제보를 받고 발굴에 나서 유해 33구와 카빈소총 탄피 37점, 민간인 단추·허리띠 등 장구류 29점을 찾아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유해가 집단으로 발굴된데다, 유품 등으로 미뤄 민간인일 가능성이 제기되자 전사자 판단을 보류하고 주변 조사를 해왔다. 군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들로 꾸려진 ‘6·25전사자 판정 2차 심의위원회’는 지난 1월28일 이곳에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주민 증언과, 유해의 나이(10~30대) 및 유품(민간인 단추), 발굴지점(계곡), 매장형태(규칙성) 등을 근거로 국군이 아니라 민간인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유해는 현재 국방부 감식단이 임시보관 중이다.


유해가 발굴된 왕대리의 마을 뒷산 골짜기에서 만난 이 마을 토박이 주민 홍정천(81)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참혹했던 장면이 떠오르는 듯 몸서리를 쳤다. 홍씨는 전쟁 당시 17살이었다고 한다.


“보통 총소리는 ‘탕탕’ 소리가 나는데 구덩이 속 사람에게 쏘는 총소리는 ‘퍽퍽’ 소리가 났어요. 새벽에 경찰서에서 사람들을 끌고 와 골짜기와 참호에 몰아넣고 총을 쐈는데 억울한 사람들도 많이 죽었지요.”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서를 보면, 여주지역에서는 9·28 수복과 1·4 후퇴 직후인 1950년 9월 말~1951년 2월 사이 최소 98명의 민간인이 부역혐의자와 그 가족이란 이유로 국군, 경찰, 치안대에 의해 재판 절차 없이 집단 사살당했다. 당시 민간인 희생자 수는 600여명으로 추정된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힌 바 있다. 진실화해위에서 ‘여주 부역혐의 희생사건’ 조사를 맡았던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연구소장은 “여주의 집단학살지 9곳 가운데 홍수에 쓸려 내려갔을 가능성이 높은 남한강변 3곳을 제외한 6곳에 대해 발굴 작업을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6·25전사자 판정 2차 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박선주 전 충북대 교수(고고미술사학)는 “여주에도 국가에 보고되지 않은 민간인 희생지가 있는 것이 확인된 만큼, 2기 진실화해위를 꾸려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폭넓은 조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주/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